김경옥(해남공고 교사)

 
 

집짓기에서 설계는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보통은 설계사의 일로 밀어놓는다. 설계사는 대개 몇 개의 샘플 도면을 놓고 고르게 한 뒤 거기에 약간의 변형을 가하는 정도에서 끝난다. 건축주의 요구는 몇 마디 말로 전달되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좋은 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설계과정에서 건축가와 집주인의 많은 논의와 수정이 필수적이다. 논의 과정 중에서야 자신의 필요와 요구가 분명해진 집주인은 여러 차례 말을 바꾸게 된다. 설계자는 불편하지만 필요한 과정이다. 건축에 관한 각종의 공학적 이론과 인문지식을 갖춘 건축사, 이 건물에서 우리 가족은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지낼 것인가라는 주제를 잡는 건축주가 귀찮도록 자주 만나는 과정에서만 좋은 집은 태어날 수 있다.

각진 코너 하나를 둥글게 처리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계단참에 작은 창 하나를 내기만 해도 생활의 편리와 질은 놀랍게 달라진다. 논의 과정에서 건축주의 요구는 모호하기도 하고, 모순이거나 불가능한 것임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 긴 대화과정에서 건축주는 주거공간을 새롭게 보는 개안을 얻기도 한다.

새 집의 가장 볕 좋고 바람 잘 통하는 위치에 당신은 무슨 공간을 배치하고 싶은가. 거실, 안방이 떠오르는가? 안방과 거실을 남향에 배치하고 나면 다른 공간은 저절로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게 된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서도 안방은 가장 넓고 좋은 자리를 차지했지만 부부의 침실 기능 외에 다른 기능은 없으니 공간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남향받이 가장 좋은 자리에 부엌을 배치한 집을 본적이 있다. 퇴임 후 부부가 함께 지내는 시간 중 음식을 준비하고 조리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자신의 생활을 반영한 거란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보낼 공간을 과감하게 중심에 놓아야 한다. 숨통 트일 구멍하나 없이 비좁은 옛날 부엌, 싱크대 앞에는 허리 펴고 내다볼 창밖 풍경 한 장 없었다. 건물의 가장 후미진 곳에 불편하게 배치된 부엌은 봉건시대 여자의 위상을 보여준다.

작고도 아담하게 두 사람이 차 마실 입식공간을 만든 집도 돋보였다. 식후 서로 얼굴 보며 창밖풍경을 보며 차를 마시고 볕 좋은 자리에서 느긋하게 독서하는 시간이 가장 많이 필요했다고 집주인은 말한다.

안방 개념은 없어지고 침실은 건물의 어둡고 후미진 공간에 두 사람이 잠잘 침대가 들어가는 공간이 된다. 넓거나 밝을 필요도 없고 중요 연결지점에 자리할 필요도 없다. 안방기능은 드레스실, 편하게 화장할 공간을 따로 배치하여 나누면 좋다.

경험 없는 건축주는 거실과 부엌, 방의 위치를 나누는 아파트식 공간분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층을 선호하나 계단은 비좁고 불편해서 잘 사용하지 않아 2층은 창고로 바뀌기 일쑤고 편리만을 생각하니 복도를 만든다는 발상을 아예 하기도 어렵다.

새 청사를 짓는다기에 그곳을 이용할,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 반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랜 시간 수정하고 대화하지 않으면 판박이 같은 건물, 보기에만 예쁘고 사는 사람은 불편한 집이 나올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좋은 집의 기준은 그곳에서 살 사람, 드나들 사람의 요구에 잘 맞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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