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전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우르릉 꽝꽝 번쩍번쩍 천둥번개가 요란하더니 세찬 소나기가 한바탕 천지를 뒤흔든다. 그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짙은 구름사이로 한줄기 햇살이 지면을 비춘다. 하늘로 올라가는 동아줄인양 그 햇살 따라 이무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삼촌들 따라 가물치 잡으러, 개구리 잡으러 둠벙으로 출동이다. 비가 와야 농사를 짓던 논 옆으로 사철 마르지 않았던 둠벙물을 용두레로 퍼 올린다.

그 사이로 개구리도 퍼 올리고 올챙이도 퍼 올리고, 미꾸리와 가물치는 주워 담는다. 한편에선 쇠꼬챙이로 개구리 사냥이 한창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뱀 한 마리가 내 얼굴을 휘어 감는다. 개구리 줍기에 신이 났던 꼬마가 소스라치게 놀라 자빠지며 기겁을 한다. 뱀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서로 어리둥절. 알고 보니 개구리 꼬챙이 꿰기에 열심이던 삼촌이 재수 없게 걸린 무자치를 내팽개쳤던 것이 정말 까무러치게도 내 얼굴로 날아든 것이다.

그 뒤로는 뱀만 보면 질색이다. 아직도 그 진저리에서 오롯이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이렇게 흔했던 무자치가 지금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개구리 맹꽁이가 사라진 논에서 무자치는 먹을 것이 없었겠지!

벼로 파랗게 가득 메워진 보기엔 풍성한 무논에서도 빈약하기 짝이 없는 황량한 먹이사슬을 어쩌지 못하고 들로 냇가로 쫓겨난다. 그리곤 가끔씩 뉴스에서나 만난다. 민물고기인 퉁가리를 잡아먹는 무자치가 보도되기도 한다.

시냇물에서 몸길이의 1/3쯤이나 되는 퉁가리를 물 밖으로 끌어낸 뒤 몸통을 칭칭 감아 질식시켜 잡아먹는 모습이다. 자기 몸뚱이보다 더 굵은 퉁가리를 머리 쪽부터 집어 삼키는 광경이 역시 뱀은 비암이다. 점액으로 가득찬 비늘로 둘러싸인 물고기는 미끌미끌 잡을 수도 없을 텐데 잘도 잡아 감아 조인다.

무자치에겐 돌기가 난 비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보통 뱀은 꾸불꾸불 'S'자 운동을 하며 나가는데 중요한, 빽빽하게 포개진 배비늘이 있다. 그래서 이를 곧추세워 앞으로 나가는데 무자치는 이를 갈음하여 돌기있는 모비늘을 갖춘 것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땅에선 좀 어둔하다.

그러나 물속에선 아예 머리를 물속에 박고 아주 능숙하게 헤엄쳐 간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엔 머리만 빼꼼 물 밖으로 내밀고 몸의 열을 식힌다. 그러다 밤이 되어 선선해지면 이윽고 몸을 움직여 눈둑에서 열을 식히던 개구리나 작은 설치류를 만찬으로 삼는다.

물론 그러다 족제비나 너구리, 능구렁이를 만나면 꼼짝없이 잡아먹히기 십상이다. 그렇게 넉넉하게 돌고 도는 것이 우리네 논둑 삶의 세상살이였건만 이제는 '침묵의 봄'을 맞이하게 되었구나! 그 위에 생태계를 아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사건들이 일어나니 먹이사슬의 대혼돈이여! 개구리 잡아 먹는 뱀이 외래종인 황소개구리에게 잡아 먹히고 있다.

물을 가로질러 헤엄쳐 가던 무자치가 황소개구리에게 꼬리를 잡히더니 뒤쪽부터 점점 황소개구리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아찔한 세상이다.

오죽 물을 좋아했으면 이름조차 물자치일까. '물 속에 사는 작은 놈'이라는 뜻을 가질 만큼 물을 좋아해도 겨울잠을 잘 때 그리고 가을에 새끼를 낳을 땐 땅에서 터를 고른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양지바른 돌 틈이나 쥐들이 파놓은 구멍으로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들어가는데 그 것을 본 사람들은 무자치를 '떼뱀'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그 무리에 섞여 유혈목이와 누룩뱀이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도 종종 있다.

꽃뱀이라고도 부르는 유혈목이는 몸 전체에서 초록빛이 도는데 연붉은색 세로무늬들이 있어 금방 눈에 띤다. 그러나 누룩뱀은 색깔도 크기도 아주 비슷해서 옆줄에 난 무늬로 구별해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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