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한양에서 보는 기준 우수영

▲ 명량대첩 전승지인 전라우수영성지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5호로 지정돼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우수영 문화마을 등 문화·예술까지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 명량대첩 전승지인 전라우수영성지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5호로 지정돼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우수영 문화마을 등 문화·예술까지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 명량대첩 해전사기념전시관.
▲ 명량대첩 해전사기념전시관.
▲ 명량대첩기념탑.
▲ 명량대첩기념탑.
▲ 4D 화력체험 영상관.
▲ 4D 화력체험 영상관.

거센 물살이 용솟음치며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울돌목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으로 조선을 지켜낸 전승지이자 역사적 교통 요충지다.

울돌목은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좁은 해협이다. 가장 좁은 곳 부분 폭은 300m도 되지 않는다. 바닷물이 갑작스레 폭이 좁은 곳으로 밀려들어오는 데다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암초가 솟아 있어 1.5m 가량의 수위 차가 발생한다. 이 수위는 빠른 물살을 만들어내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함한 해협을 만들어낸다.

유속은 11.5노트, 빠르면 최대 13노트까지이며 자동차 속도로 표현하면 시속 24km이다. 하루에 4번 밀물에서 썰물, 썰물에서 밀물로 조류가 바뀐다. 이 때 물살이 잔잔한 상태가 하루에 2번 30분씩 반복되는데 이 현상을 정조라고 부른다.

이연숙 문화관광해설사는 "울돌목은 물살이 워낙 거세기 때문에 진도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바다가 잔잔해지는 정조 때 배를 타고 진도 벽파진과 해남을 오갔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울돌목은 울 명(鳴) 들보 량(梁)을 써서 명량으로 부른다. 해동지도에는 수질여전(水疾如箭), 즉 '물살이 화살처럼 빠르다'고 설명돼 있고, 여지도서에는 '병 주둥이처럼 생겼는데 큰 물결과 커다란 파도가 좁은 협곡을 만나 방망이를 찧는 듯한 격렬한 소리를 내며 운다'고 나타나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병목처럼 좁은 곳이어서 목 항(項울)을 붙여 명량항으로 기록했다.

또한 바닷물이 울고 도는 물목이자 물살의 소리가 20리 밖까지 들린다 하여 울돌목이라 불리기도 한다.

울돌목이 있는 곳은 왜구를 막기 위해 수군절도사가 주재하는 주진인 전라우수영 지역이다. 우수영은 현대 지리적 통념을 기준으로 봤을 때 서해바다와 인접해있는 서쪽 지역이다. 하지만 이전에는 임금이 있는 한양에서 내려다봤을 때의 위치를 기준으로 잡았기 때문에 서쪽 지역이 우수영이다.

우수영 일원은 명량대첩의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1986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돼 우수영관광단지가 문을 열었고 1991년에는 명량대첩 기념공원이 개장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라우수영의 역사성을 인정받아 문내면 선두리 등 17만1804㎡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5호로 지정돼 성곽 복원사업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우수영관광단지 내에는 청룡산과 이어지는 산책길과 전망대, 공연무대와 물살체험장 등이 조성돼 있다.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어록을 담은 비석도 만날 수 있다. 의제 허백련 선생이 글씨를 쓴 '약무호남 시무국가(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다), 이순신 장군이 양도 앞에 판옥선을 숨겨두고 명량대첩 하루 전 주둔하면서 남겼다는 '필사즉생 필생즉사(반드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고 살길만을 찾고자 하면 죽는다)'가 새겨진 충무공어록비 등이다.

이와 함께 13척의 병선으로 왜선 133여척을 격파해 조국을 지킨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높이 17m의 명량대첩기념탑, 부서진 판옥선 12척을 밤낮으로 수리해 명량대첩을 가능케 한 정충량·김세호 등 무명의 선장과 목수들을 기린 상도 찾아볼 수 있다.

공원 내에는 울돌목쇠사슬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울돌목 해안 양 쪽에 쇠사슬을 매어놓고 일본 전선을 유인, 쇠사슬을 잡아당겨 배를 뒤집히게 했다는 설화에 따라 복원한 것이다.

이 설화는 명량철쇄설이라 불리며 명량대첩 150년 후에 등장했다. 난중일기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명량대첩 해전사기념전시관
특허청 상표등록 이순신상

해남군은 울돌목와 우수영관광지 일원을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명량대첩 해전사기념전시관을 건립, 지난 2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이며 건물 외형은 판옥선을 본땄다.

내부에는 조선수군재건 과정과 난중일기 기록, 4D영상 화력체험, 조선 수군력의 과학적 탐구, 1대1 크기로 지현한 판옥선의 위용, 세계해전 주제관 등이 마련돼 있다. 화력체험은 5분 가량 명량대첩 4D 영상을 관람하는 것으로 1인 1000원이다.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도 운영되고 있다.

물살체험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인다. '고뇌하는 이순신상'이다. 전국의 이순신장군 동상 가운데 처음으로 특허청에 상표등록한 것으로, 높이가 2m 가량이어서 가장 작은 크기의 이순신 동상이다.

물살체험장에서는 휘몰아치는 울돌목 물살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으며,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숭어를 낚아채는 숭어뜰채잡이도 관람 가능하다.

 

 
 

싱싱한 보리숭어 뜰채로 낚아채는 묘미

숭어 뜰채잡이는 문내면 주민들이 예부터 숭어를 잡아오던 방식이다. 우수영 뜰채잡이 박양호(58) 씨에 따르면 수십 년 전 지금보다 숭어가 많이 잡힐 때는 뜰채가 아니라 나무갈퀴를 이용해 숭어를 잡아 올렸을 정도라고 한다.

울돌목에서 잡히는 숭어는 표준명 '숭어'다. 눈이 크고 흰자위에 검은색 동공이며 날렵한 제비꼬리가 특징이다. 4~6월 보리를 심어 익을 때까지 잡힌다고 해서 보리숭어로도 불린다.

울돌목 숭어가 산란기를 앞두고 바다를 거슬러 올라온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숭어는 10월부터 1월이 산란기이기 때문에 4~6월 잡히는 숭어는 알이 없다. 여름철에 산란하는 것은 표준명 '가숭어'이다. 가숭어는 눈이 작고 노란색에 검은색 동공을 띠며, 3월부터 6월이 산란기이다.

숭어를 부르는 명칭이 표준명과 방언에 차이가 있는 데다 지역에 따라서도 다르다보니 혼선이 빚어진 영향도 있다.

그렇다면 산란기가 아닌 숭어가 울돌목을 거슬러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씨는 그 이유를 수온으로 추정한다. 남해에서 서식하던 숭어가 날이 따뜻해지면서 수온이 오르자 상대적으로 수온이 낮은 서해로 이동하는 과정이라는 것.

세찬 물살을 거슬러 올라온 울돌목 숭어는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울돌목에서는 다섯 물에서 열 물 사이 물살이 셀 때 숭어가 많이 잡히며, 하루 50마리 이상 잡히기도 한다.

 
 

송지면에서 넘어오는 왜적 감시하던 요충지

망해루(望海樓)는 이름 그대로 바다를 조망하고 왜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망해산 정상에 위치해 있었다고 전해지며 현재의 누각 건물은 복원된 것이다.

지금은 소나무 등 많은 나무가 누각을 둘러싼 채 자라있어 시원하게 트인 경관은 볼 수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 당시에는 송지면 방향에서 문내면 임하도 방향까지 사방의 바다를 단숨에 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우수영 마을 일원과 황산면 옥매산, 임하도 등까지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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