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은 예로부터 중요한 역사적 요충지를 담당했던 지역이다.북평면은 제주로 향하는 해상교통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곳이다. 북평면 남창리에서 완도로 이어지는 동쪽 해안은 달량진성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종대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 초 만호가 배치됐던 우수영 관할의 진성이다.달량진성에 지어진 해월루는 저녁에 만조로 바닷물이 가득 차면 바다에 달이 하나 더 떠있는 둣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해 해월루(海月樓)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수군의 정박장소이기도 하고, 제주를 왕
대흥사를 둥글게 안고 있는 두륜산의 가련봉 방향으로 제법 험한 산세를 오르다 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쯤 돌계단 위에 자리잡은 전각을 만난다. 이 전각의 이름은 용화전. 천녀가 아로새겼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을 담고 있는 곳이다.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산꼭대기의 자연 암반을 그대로 활용해 조각됐고, 높이 4.2m에 달한다. 높은 곳에 위치한 만큼 봉우리의 절경도 두루두루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북미륵암은 보물 제48호로 지정됐다가 지난 2005년 국보 제308호로 승격됐다.이름에 북쪽을 뜻하는 '북
해남군은 국문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고산 윤선도부터 민족시인 김남주 시인 등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인들을 배출해온 문학 정신이 서린 지역이다.조선시대 시가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고산 윤선도는 해남윤씨로, 종가는 해남읍 연동리에 위치하고 있다.윤선도 고택에 세거해온 종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해남윤씨 8개의 파 중에서도 어초은 윤효정이 시조인 어초은공파 문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산 윤선도는 윤효정의 4대손으로, 조선중기 대표적인 시조시인이자 조선조 시조문학을 마지막 장식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해남은 고려시대 때 영암군에 속한 현이었다.'우리 마을의 삶과 문화'에 따르면 옛 해남현은 조선조 태종 9년인 1409년 진도군과 합해져 해진군이 되고, 치소를 지금의 삼산면 나범리에 소재하는 구녹산역지로 옮겼다. 3년 후에는 왕산고현성으로 옮겨 지금의 해남읍 성내리에 읍성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해남읍성으로 치소를 옮긴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읍성의 남문인 정원루가 완성된 해가 성화을축년 1469년으로 나와 있어 이 즈음으로 추측되고 있다.해남현이 해진군에서 다시 해남현으로 분리된 것은 세종 19년인 1437년이다.
깨끗하고 시원한 지하수로 마음껏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 해남에 있다. 바로 북평면 동해김치마을이다.동해김치마을은 북평면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남읍과 완도를 연결하는 813번 지방도 부근이어서 접근성이 좋다. 지난 2005년 녹색체험마을, 지난 2007년에는 행정자치부 정보화마을로 선정된 후 해남김치마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김치담그기, 갯벌체험, 인절미떡메치기 등 다양한 계절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수영장은 여름철에만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마을 뒷산과 인접한 곳에 조성된 수영장은 자연 속에서 물놀이를 즐기며 여유로움을
시원한 계곡과 바다에 발을 담그거나 햇볕이 내리쬐지 않는 숲 속에 몸을 맡기고 싶은 무더운 여름, 7월이다. 초·중·고등학교가 잇따라 방학을 하면서 여름철 휴양지 고민을 하게 되는 이 시기에 멀리 떠나는 부담 없이 해남에서 가볼만한 여름 휴양지를 소개한다.현산면에서 가장 사랑받는 휴양지인 구수골계곡유원지는 황산리 봉동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봉동마을에 있다보니 봉동계곡이라고도 부른다.구수골계곡은 시원한 계곡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곳이다.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놓아서 아이들도 안전하게 물놀이를
83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시대의 공룡들이 살아있다면 어떨까. 황산면 우항리 공룡화석지는 상상 속 공룡들의 모습을 발자국·화석·모형 등 다양한 형태로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룡박물관의 여러 체험 프로그램까지 참여할 수 있어 배움과 놀이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곳이다.우항리는 본래 화원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바닷가 지역이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지주식 김양식이나 낙지잡이 등 해산물을 채취했고 우항포구가 있어 물류기지 역할까지 담당했던 곳이다.이 곳에서 지난 1986년 공룡발자국의 흔적이 발견됐다. 당시 금호방조제
거센 물살이 용솟음치며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울돌목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으로 조선을 지켜낸 전승지이자 역사적 교통 요충지다.울돌목은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좁은 해협이다. 가장 좁은 곳 부분 폭은 300m도 되지 않는다. 바닷물이 갑작스레 폭이 좁은 곳으로 밀려들어오는 데다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암초가 솟아 있어 1.5m 가량의 수위 차가 발생한다. 이 수위는 빠른 물살을 만들어내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함한 해협을 만들어낸다.유속은 11.5노트, 빠르면 최대 13노트까지이며 자동차 속도로 표현하면 시속
전라우수영성지 일원은 명량대첩 격전지이자 지리적 특성상 해상교통 요충지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번화한 지역이었다. 선두리에는 생선을 파는 수많은 상인들이 장사판을 벌였고, 진도를 오가는 주민들로 북적였다.하지만 1970년대 이후 저잣거리와 면사무소 등 주요 건물이 이전하고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점차 침체되기 시작했다. 마을은 개발되지 않았고 옛 건물들은 그대로 방치됐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우수영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문화재생사업 소울프로젝트가 진
차의 성지이자 호국 대흥사로 향하는 길은 아름드리 울창한 나무가 반긴다. 아홉 굽이 굽이지는 숲길이라는 의미의 '구림구곡'이라 불리는 두륜산 도립공원 장춘길이다. 장춘길의 쭉 뻗은 나무가 만들어낸 숲 터널을 저벅저벅 걸어 올라오면 두륜산에 녹아든 대흥사와 마주한다.여느 사찰이 그렇듯 대흥사에서도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으로 일주문이 등장한다.그런데 대부분의 사찰은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문이 나오지만 대흥사는 사천왕문이 없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대흥사의 북쪽에 월출산, 동쪽에 천관산, 남쪽에 달마산, 서쪽
문내면소재지 서북쪽에 위치한 예락리는 예락마을, 동리마을, 양정마을, 임하마을 네 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으로 양정리와 임하도를 병합해 지금의 예락리가 구성됐다. 임하도는 1988년 임하교가 준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됐다.예락리는 천혜의 자연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바다를 끼고 있어 농업과 어업을 겸하는 주민들이 많다. 벼농사부터 배추·고추·양파·세발나물, 세발낙지와 굴 채취, 천일염 생산까지 다양한 농수산물이 생산된다.그 중 세발나물은 예락마을의 대표적인 효자 작목이다. 바닷가 근처에서 나는 잡초로 여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達摩山)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수려한 능선이 아름다운 산이다. '남도의 금강산'이라는 별칭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으며 높이는 489m이다. 송지면과 북평면의 접경지역인 달마산은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 능선을 따라 산행하면 주변 해안 경관도 함께 바라볼 수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종 5년(1218) 중국 남송의 배가 달마산 동쪽 바다에 표류했다가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하여 마지 않았더니 가히 달마대사가 살고 계실만 하다'며 참배하고 달마산을 화폭에 담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우리의 고장 해남에는 자연·역사·문화 등 수많은 관광자원이 산재해 있다.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몰랐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해남의 관광자원을 구석구석 소개하는 문화관광해설사를 통해 해남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동시에 해남신문 자회사인 해남방송과의 협업을 통해 현장감 넘치는 영상을 함께 전달코자 한다. "시작이자 끝, 끝이자 시작새출발과 희망의 상징 해남"한국 대륙의 최남단 송지면 땅끝마을. 우리나라 국토의 머리인 백두에서 시작된 지맥이 땅끝에서 숨을 고르고 멈추어 선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