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해남공고 교사)

 
 

내가 아는 행사 중에 만족도가 제일 높은 행사가 하나 있다. 거기엔 축사도 격려사도, 표를 의식해 명함을 돌리고 내빈을 소개하는 순서도 없다. 광고판 하나도 없고 행사자체의 목적 이외에 귀나 눈을 바쳐야 하는 불편함도 없다. 행사를 성공시켜 주최측의 역량과 위상을 높이려는 계산마저 깔리지 않는 그런 행사.

행사를 설렁설렁 준비한 게 아니라 오직 참가자들의 만족만을 배려한, 준비되지 않은 것 같은 그러나 자연스럽게 잘 흘러가는 행사. 4월초파일 부처님 오신날 절의 중심 대웅전에서 마당 하나 떨어진 중심공간 자하루에서 지역 어르신 노래자랑이 열린다. 참가자는 군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이다. 노인들은 자기가 가진 옷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고 와서 신청한 순서에 맞춰 자기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관객들은 호응하고 동감한다.

그 노래자랑엔 배경 소음도 없고 스펙타클도, 새로움도, 낯설게 하기도, 쇼킹한 것도 없다. 단지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들의 인생을 담담하게 돌아보며 곡진하게 부르는 노래 한자락들과 거기에 호응하는 박수가 있을 뿐이다.

초파일이 절에서 얼마나 중요한 날인가. 대웅전은 사찰의 가장 신성한 공간이 아닌가. 그 정면에서 돈도 빽도 없는 무지랭이 노인들에게 시공간을 마련한 사찰측의 배려가 놀랍지 않은가. 나중에 알고 보니 '지역민과 함께하는 사찰'이라는 절 운영의 원칙이 있고 그를 위해서 만들어진 행사란다.

광고나 홍보나 표 모으기 같은 요소들은 어떤 행사의 주변적 요소로 배치되는 것을 넘어 요즘은 어디서나 행사의 근간에 끼어든다. 도무지 이 행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하는 행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그러다보니 행사가 흔들린다. 돈과 표를 의식하면서 행사를 만들다보니 참가자는 주인이나 대접받아야 할 손님이 아니라 동원대상일 뿐이다. 거기에 모두가 익숙해졌다. 사람들은 불편해하면서도 으레 있는 일이거니 이 행사에 돈 댄 사람들의 돈으로 행사가 열리는 것이니 감수하고 잠깐 참고 넘어가면 그만이지, 물건 안사면 나 손해보는 건 없지 하는 체념의 순간을 보낸다.

시골 노래자랑이 다 그렇다 할 수 있겠지만 어설픈 노래자랑은 많이 불편하다. 높으신 분들의 장광설, 각종 선전과 홍보, 각설이랍시고 과장되게 가난을 연출하여 사람들의 호기심을 노리는 이도 있고, 엿을 팔려고 온갖 성적 농담으로 자극적인 말과 행동을 남발하는 곳도 많다.

이 행사의 편안함을 계기로 돌아보니 우리의 모든 행사는 행사 본래의 목적은 늘 뒤로 밀리고 표나 돈의 획득, 홍보와 선전의 기회, 서열의 확인이라는 뻔뻔한 목표가 제일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감춰져 있었다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 많고 많은 행사들은 다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던 것이다.

쉽게 생각해 그깟 것 못할 거냐고, 그게 뭐 대수로운 거냐고 물을 이 있겠지만 상업주의 성과주의를 벗어나 참가자의 만족도만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 눔의 돈이나 표를 벗어나는 어려운 결단이기도 하다. 이 행사를 보니 기본도 작동하지 않는 우리사회, 사회의 상업화 정도를 돌아보게 된다.

이런 행사를 준비한 미황사의 저력은 간단한 게 아니다. 다음에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고맙고 또 고맙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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