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해남공고 교사)

 
 

대학을 스카이, 인 서울, 지방대로 나누고 지방대를 지잡대로 부르며 무시하고 차별한다는 말에도 답답했었다만 이젠 서울에 소재한 대부분의 대학들내에서도 캠퍼스에 따라 입학생을 차별하고 정시와 수시 입학생을 구분하고 재수와 삼수생을 나누어 성골 진골이라 부르고 농어촌 특차나 지역균형전형 입학생들을 6두품이니 지균충이니 농촌충이니 멸시한다는 소식은 참으로 암담하다. 너희들이 무시당한다는 것도, 차세대의 리더에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소위 명문대생의 머릿속이 겨우 요 정도라는 것도 걱정스럽다.

시골학교를 전전하던 나는 수업시간이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은 너희들을 공부 속으로만 몰아넣었다.

문제 많은 사회, 현행의 교육과 입시에 대해서도 불만은 많았다만 현실을 비판만하고 통째로 부정만하는 일은 눈앞에 있는 너희들의 장래를 가로막을 수도 있어 결국은 입시교육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음을 변명한다.

시골의 중요성이 분명하게 있는데도 사회의 모든 부와 에너지, 사람들은 도시로만 몰려간다.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진다. 경제적 차이를 넘어 교육권, 건강권, 각종의 복지 혜택, 문화 향유의 기회에서도 시골이 불리함은 커져만 간다. 퇴락을 거듭해가는 시골, 그 시골에서 그래도 공부를 하겠다고 질문하던 너희들의 눈망울을 기억한다.

중앙에 대한 지방의 정치 경제적, 사회문화적 차별 구조를 당장에 바꾸진 못하더라도 대학입학 기회의 격차라도 해소해보려는 최소한의 장치가 지역균형선발전형이나 농어촌특차전형이었다. 대학입학 기회마저 도시가 독점하면 도농간의 불평등과 차별적 구조가 해소될 수 있는 가능성은 영 없어진다.

현실에선 사교육의 뒷받침 없이 대학가기란 결정적으로 불리하다. 시골은 공교육의 시설, 여건도 열악하고 사교육은 아예 말하기도 어렵다. 이 절대적 불리함을 이겨낸 너희들의 노력이 수능 점수 몇 점 차이라는 이유로 비하를 받다니. 치열한 대입관문에서 수능 점수 몇 점 차이가 큰 것일 수도 있지만 진짜로 더 큰 것은 그들과 너희들의 공부 여건의 차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이는 각종의 유리한 혜택 속에서 헬리콥터맘으로 불리는 부모들의 알뜰한 보살핌으로 성적을 거둔 저들이다.

몇 개 시험문제 차이로 인간의 능력이 평가되는 입시제도의 한계, 능력보다는 대학에 따라 취직이 좌우되고 대우가 달라지는 이 사회의 불공평함과 시골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외면하고 같은 반 급우를 멸시하기에만 바쁜 저들은 기득권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애들일 가능성이 높다. 특권을 누릴 상층을 소수화하기 위해 배제와 차별을 퍼뜨리는 공격성이 저들의 본질이다.

경쟁 앞에선 늘 '이 공정은 공정한가' 감춰진 차별, 구조화된, 누적된 차별은 없는가. 출발선이 같은가를 숙고해보아야 한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 이야기에서 왜 거북이는 수영으로 게임을 하자고 요구할 수 없었을까. 시합이란 공정한 거 같지만 경기 종목에 따라 유리한 이가 이미 결정된 채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골 사람들이 출발점에도 설수 없는 수 많은 경주들이 당연한 것이라고 쉽게 넘기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왜 시골은 가난해야 하는지 그들이 조직적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그 시합의 룰은 필요하고 정당한 건지 뜯어보아야 한다.

지균충이라는 무시를 못들은 척 피해가선 안된다. 너희들 정도의 능력과 노력이 도시의 아이들의 조건을 만났다면, 거꾸로 프로펠러를 떼어낸 그들을 시골로 데려 온다면 결과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본다. 타고난 재주, 끈질기게 노력하는 힘,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성품, 장래의 발전 가능성에서 결코 너희들이 뒤지지 않을 것이다. 당당하게 맞서라.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특성화고등학교의 친구들이나, 지방대나 다른 대학 친구들에 대해 허황된 우월감이 너희들의 내부에 자리잡는 일이다. 늘 경계하고 돌아보기 바란다. 긴 호흡으로 정진하여 속 좁은 패거리들을 능가하는 실력과 품성을 보여주기 바란다.

땅끝에서, 너희들이 보고 싶은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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