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의 일년 삼백 육십오일, 그 날짜 밑을 살펴보면 참으로 여러 부류의 각종기념일들이 많이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몇 해전부터 10월2일을 노인의 날로 제정하고 해마다 기념식과 아울러 노인들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들을 해오고 있다. 일찍이 동방예의지국이라 지칭되어왔던 우리나라에 노인의 날 제정이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날만이라도 노인문제에 관심 갖고 그분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줄 수 있게되어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한다. 노인의 날이 제정되던 첫해, 기념행사가 실내체육관에서 성대하게 열리고 나도 그 행사에 축가를 부르기 위해 어머니합창단의 한사람으로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흥겨운 우리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시며 어린아이 마냥 즐거워하시던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덩달아 흐뭇하고 즐거웠었다.
그 날,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나의 친정어머님께서 노인노래자랑에 참가하셔서 멋드러지게 열창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시골의 인구가 날로 노령화 되어가고 노인문제가 큰 사회문제가 되고있는 지금, 그래도 봄이면 마을마다 노인들을 위해 경로잔치를 하고 부녀회와 청년회의 후원으로 효도관광을 보내드리는 기사들이 지역신문을 통해 많이 소개되고 있음은 농촌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설날 아침이면 마을회관에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합동으로 세배 드리고 떡국을 대접하는 마을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내가 다니고있는 시골교회에서는 몇 해째 교구내의 마을어르신들에게 목욕봉사를 다니고 있다. 몸이 불편하시고 교통이 좋지 않은 시골의 어르신들께서 가장 필요해하시고 또 감사해하시는 봉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분들의 주름지고 깡마른 등을 밀어드리며, 평생 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와 죄스러움을 느낀다. 부모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드리고자했던 소망은 끝내 이루지 못한 것 같다. 모두가 삭막하다고만 생각하는 현대사회에서 참으로 다행하고 감사한 것은 자원봉사자라는 이름으로 그분들에게 다가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알고있는 어떤 이는 늦은 나이에 만삭의 몸으로 미용사자격증을 취득하더니 몸이 불편해서 활동하지 못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다니며 미용봉사를 하고있다. 그녀의 수첩에 봉사 가는 날과 장소가 군데군데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10시 이전에는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는 늦잠꾸러기인 그녀지만 이날만큼은 어김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약속장소로 가는 모습을 본다. 머리도 잘라드리고 파마도 해드리고, 홀로 사는 외로움과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지친 그분들의 말벗이 되어 드리고 때로는 텅 빈 냉장고에 맛있는 반찬들을 채워드리고 필요한 물건들도 챙겨다 드리며, 스스로 남을 도울 수 있음에 감사해하며, 기쁘게 사는 그녀를 볼때마다 정말 대견스럽다. 그녀의 어린 두딸들은 가끔씩 엄마의 산교육장에 동행하여 정에 굶주린 그분들의 귀여운 손녀들이 되어 재롱을 부리고 많은 사랑을 받고 돌아온다. 그녀가 베푼 아름다운 사랑은 텃밭의 애호박이나 몇알의 밤고구마, 또는 맛있는 단감이 되어 되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역시 사랑은 주고받은 것이라더니 그말이 맞나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한 가운데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있음에 감사하며 내게 있는 아주 작은것 하나라도 함께 나누며 살고자 한다면 빛나고 아름다운,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들의 아주 작은 관심이 크나큰 사랑이 되어 지친 노인들의 삶에 큰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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