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는 눅눅하고, 바람은 한 점 없고…. 지루한 장마가 시작되려나 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올해는 큰 기상이변 없이 장마철에 맞춰 장마 비가 올 모양이다. 이제 진딧물이 내놓았던 배설물에 곰팡이가 내려앉고 균류들이 생겨나겠지…. 당근 이런 유기물들을 찾아 똥파리들이 몰려들 것은 뻔한 이치. 밥상에도 꼬이고 쓰레기에도 몰려드는 파리들은 그 다리와 몸체에 병균을 옮겨 퍼트리기에 위생해충으로 분류된다. 그렇게 파리는 우리에게 달갑지 않은 존재로 다가온다.

그러나 같은 파리목에 들어가더라도 친환경방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파리가 있다. 혹파리과로 분류되는 진디혹파리들이다. 비록 파리로 분류되기는 해도 생김새는 파리하고 아주 다르다. 모기처럼 가느다란 긴 다리를 가졌고, 몸체도 비교적 날씬하다.

다만 왕방울 겹눈만은 영락없는 파리다. 하긴 날개가 2장이면 파리로 봐야지. 그래서 모기도 파리목에 들어간다. 그러니 파리면 어떻고 모기면 어떻겠는가.

겉모습은 모기라도 애벌레를 보면 확실히 파리과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리 없이도 몸을 꿈틀거려 진딧물에 다가가는 모양이 말 그대로 구더기다. 그것도 아주 예쁜 고자리. 그러나 노란색이나 진한 빨간색을 띤 예쁜 애벌레가 진딧물만 보면 눈이 뒤집힌다. 빨대처럼 생긴 주둥이로 진딧물에 침을 찔러 마취시킨다.

적어도 10여분이면 진딧물의 몸을 마비시키며, 마비된 진딧물의 체액을 혹파리 애벌레가 빨아먹는다. 그리고 체액을 빨린 진딧물은 홀쭉하다 못해 납작해진 채 갈색이나 흑색으로 변하면서 빈껍데기만 세상에 남겨놓는다.

식성도 대단해서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양 이상의 진딧물을 죽이는데 주변에 진딧물이 많으면 일단 침을 찔러 마비시켜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먹는다. 그리고 일단 독물에 당한 진딧물은 체내 내용물이 미리 소화되기 좋은 형태로 반죽이 된다.

그러니 나중에 빨대만 꽂으면 먹는 건 식은 죽 먹기. 그렇게 애벌레 한 마리가 죽이는 진딧물 수는 많게는 100여 마리에 이른다. 진디혹파리 한 마리가 적게는 70개에서 많게는 200개의 알을 낳으니 최대치로 2만 마리의 진딧물을 죽이는 것이다.

우리 토착종으로서 이만한 지킴이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천적들과 비교해서도 쉽지 않겠지만 눈으로 찾기도 쉽지는 않다. 진딧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기는 하지만 크기가 매우 작아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어른벌레가 되면 낮에는 그늘진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쉬다가 밤이 되면 활동을 시작하니 찾기가 더욱 어렵다.

낮에는 잎 뒤쪽이나 거미줄 한 가닥에 두 다리를 걸치고 거꾸로 매달려 쉰다. 그러다 밤이 되면 휘뚜루마뚜루 가냘픈 몸매로 여기저기 쏘다니지 않는 곳이 없다. 그 북새통에도 해질녘 그리고 동틀 무렵이면 알을 낳고 짝짓기를 한다.

알은 어둡고 습도가 높은 잎의 뒷면과 아래 부분에 낳는다. 그것도 진딧물이 많은 무리를 이룬 곳에 낳는다. 그러나 진딧물만 바글거리고 식물체가 없는 곳에선 알을 낳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반드시 적당한 습도와 은신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낳아진 알들은 2-3일이 지나면 애벌레가 되고 1주에서 2주가 지나면 번데기로 바뀐다. 다시 2주가 지나면 날개를 달고 어른벌레가 되는데 그 기간은 고작해야 4-5일이다. 한 세대를 살아가는 것이 35일 정도 되는데 그 중 어른벌레 기간이 5일. 세대번식 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

오늘도 과수밭에선 진딧물이 생겨나고 그 먹이를 찾아 혹파리가 알을 낳았다. 갖춘탈바꿈을 하는 생명체가 시도 때도 없이 새끼를 낳아대는 종족들을 상대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용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수적 우세를 갖지는 못한다. 신비한 생태계의 그물망은 서로 서로 상대에 맞춰 개체수를 알맞게 조절중이다. 인간이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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