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신문에 와서 벌써 78번째 칼럼이며 마지막 회입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역할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판단하고 해남신문을 정리합니다. 애초 임기를 조금 못 채웠습니다. 기자로서 마지막 현장 근무여서 그동안 취재도 함께 병행했으면 좋았을 것이나 이는 기자들의 몫으로 넘겼습니다. 전국적인 사안은 뒤로 두고 지역에 최대한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글 소재의 폭이나 깊이가 없었던 점 죄송합니다.

해남에 있으면서 큰 기쁨과 소득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해남의 환경에 대한 발견입니다. 해남 분들이야 늘상 보겠지만 저는 발견이랄 만큼 빼어난 자연환경을 봤습니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저는 농어촌은 지식으로만 접하는 수박 겉핥기였습니다. 해남 생활로 수박을 쪼개서 속을 들여다보는 정도는 됐다고 봅니다. 여전히 맛은 못 봤지요. 그래도 농어촌 실상의 윤곽과 문제와 과제를 알아차리게 돼서 저로서는 또 하나 배움입니다.

가장 기초이자 상수적 문제는 인구입니다. 더 절실하게 느낀 계기는 선거구개편 소식 때였습니다. 대의제의 불균형을 맞추라는 대법 판결은 정치의 문제가 아닌 농어촌의 모든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봤습니다. 청장노년층의 순환 부전, 인물난에 따른 대안생산 부재, 경제구조의 단순화와 취약성 등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경기순환의 장기 파동인 콘트라티에프 파동처럼 농어촌의 재활의 시기는 올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대응하는 몇 가지 소극적인 인구정책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도시는 도시대로 인구가 넘쳐 문제가 산적되는데, 이 인구문제를 두고 헌법소원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2020년이면 면단위 학교가 모두 사라질 거라는 학교관계자의 한숨을 접할 땐 더욱 그렇습니다.

아쉬움도 있습니다. 처음 썼던 글 제목이 '해남 박씨입니다'입니다. 이는 해남에 살려고 그랬던 건 아니고, 기실 입장을 가리지 않고 많은 분들을 만나고 여러 곳을 다녀 보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들로 그렇지 못하고 결국 해남만의 뉘앙스 차이를 파악하는데 이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외지 사람이 느끼는 해남의 벽쯤이랄까요.

저는 평소 '자식과 후배는 있는 자체로 혁명'이라는 다소 과격한 관점이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들은 달라지는 게 목표이고 달라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해 기성세대가 지나치게 제어하거나 반대로 방관하거나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인내와 관용으로 그들이 독립하도록 살피는 것이 최선 아닐까요. 재앙수준인 청년들의 문제 근원은 어딜까요. 생각만 그랬고 그들과 일을 같이 하고 부대끼지 못해서 후회가 됩니다.

때로 '지역문제'에 천착을 하다 보니 물정 모르고 덤벙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계몽적 태도가 마땅치 않다고도 지적을 했습니다. 옳은 말씀들입니다. 변명을 하자면 계몽적 태도가 아니라 아직 제 실력이나 노력, 됨됨이가 익지 않아 서투른 탓이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점은 평생 화두 삼아 신독(愼獨)해야 할 과제를 주신 것으로 여기겠습니다.

미처 인사드리지 못한 분들께는 이 지면을 통해 인사드립니다. 특히 밥을 자주 먹은 영일만, 백경, 오거리식당 쥔 분들께 감사합니다. 해남과 해남신문에 그간 신세 많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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