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해남에 왔을 무렵 이미 지방자치선거 분위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여러 이야기 가운데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었다. "해남이 살기 좋은 곳이었고, 인심이 사납지 않았다. 그런데 지방자치제 이후 힘들어졌다" 이게 뭔 소린가. 지방자치는 오랜 권위주의 정치를 청산키 위한 국민의 소망이었다. 또 중앙권력으로부터 주민들에게 권력을 나누는 제도로서 그 가치를 국민 대다수가 동의했다. 그런 제도가 거꾸로 주민을 힘들게 하다니.

기실 대도시에서 지방자치는 너무 다양한 성격의 유권자들, 정치 무관심, 공동체의 멸실 등으로 그 취지가 무색해 가는 측면이 있다. 실로 엉뚱하게 지방자치 무용론도 나오는 실정이다. 하지만 해남은 도시와는 무척 다른 환경이어서 그 말이 의외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 의문의 원인을 정확히 조사하거나 풍부하게 의견을 듣지 못했더라도 갈등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갈등의 질이 예사롭지 않다. 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상황, 조건, 상대에 따라 아주 다르겠다. 때로 갈등은 화합이란 반대현상으로 도치되기도 한다지만 말이다. 내가 경험한 해남의 갈등은 짐짓 무심한 척 하면서도 전쟁이다. 늘상 만나고 어떻게든 연고가 있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자리도 함께 한다. 그러나 이미 둘 사이에는 치열한 전선이 그어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군인들의 전투 아닌 참혹한 백색, 적색테러의 기억이 있다. 그 억눌린 기억을 생생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살고 있다. 그 기억은 우리 전체가 공유하는 것인데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죽기 아니면 살기의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는 유산은 털어 버리기에 너무 크다. 우리 한 지역사를 얘기할 때 꼭 말해야 될 사실을 "나 없다"고 내 눈을 가려봐야 없어지지 않는 건 분명하다. 이번에 발간된 군지에도 한국전쟁 전후 잔혹사는 40페이지에 겨우 몇몇 윤곽만 썼다.

그 거대하고 잔혹한 마그마가 들끓며 잠복해 있는데 화산활동을 일으킨 계기가 선거 아닌가 싶다. 당연히 갈등해소의 순기능을 지자제에 기대했다. 그런데도 선거과정에서 순기능보다 돈과 줄 세우기가 갈등의 화염을 지피고 말았다. 이러니 당선돼도 전쟁 중이다. 말 잘 듣는 사람들을 줄 세우면서 차별전쟁 신호탄을 쏘았다. 게다가 해남의 그간 군수들의 정책은 개발시대의 정부정책과 닮았다. 현재 그 결과로 부패와 불평등과 양극화가 커지고 있다. 이를 해소키보다 키우는 정책에 치중하고 있다. 규모화와 기업유치, 건설토목에 목을 매단다. 군수들은 살려는 건지 죽으려는 건지 모르겠다. 과거 2명의 군수가 쇠고랑을 찼다.

이러니 갈등을 해소하자는 사람들 역시 전쟁에 빠져든다. 한 쪽이 폭력을 쓰면 상대도 쉽게 폭력을 합리화하고 일반화 된다. 선거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나서고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니 그 전선의 복잡함이란! 관계는 어려워진다. "지자제 이후 힘들어졌어…" 해남신문에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귀농.귀촌인과 다문화세대. 도시와 농어촌의 문화 차이, 국적의 다름은 갈등을 부를 수 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이들이 많아질 텐데, 이래서 삼중사중으로 꼬이는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외부인을 받아들였더니 힘들어졌어" 이럴 순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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