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민심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메르스 파동을 비롯해 무능한 정부에 대해 민심이 들끓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보선 후 휴유증이 크다. 그들이 마음을 다잡고 만든 혁신위원회 김상곤위원장은 그 일성이 당권재민이다. 민심을 토대로 혁신을 하겠다는 뜻이겠다. 맞상대인 여당은 여당대로 혁신을 이루겠다는데, 국민의 저변에서 그 뜻을 읽고 활동한 사람들을 들이겠다고 한다. 정국을 요동친 천정배의원도 호남민심을 등에 업겠다고 했다.

실상 민심을 파악토록 제도화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나마 이 제도들조차 무력화됐거나 무시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크고 작은 일에 잡음이 많고, 왜 민심을 역행하느냐는 질타도 끊임없다. 해남도 마찬가지다. 신청사 추진이 그렇다. 밥쌀용 쌀을 수입하는데, 군청과 의회가 한마디도 없었던 사실도 민심과도 영 동떨어진 태도였다. 해남고 재시험의 경우,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있으나 기실 민심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집 지원금 환수 건이나 폭행 건 등도 누가 별말 안하고 있으니, 문제없다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모습이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한다. 천심을 다시 풀면 '자연'이랄 수 있겠다. 혹여 천심이, 하늘이 날 돌보니 어쩌니 하는 건 아전인수다. 자연은 선악 구분이 없다. 편견도 없다. 희노애락도 없다. 무심한 상태다. 때로 천국과 같은 신록에 꽃들이 만발한다. 모든 잡념을 잠재우는 드넓은 평온의 바다로 현신 한다. 하지만 질풍노도에, 화산폭발에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문명을 한순간에 쓸어버린다. 모든 것이 바짝 타는 가뭄이 몇 년 간 계속되기도 한다.

인간사 하나의 단독 사례를 보면 통계의 정상분포 곡선을 그린다. 하지만 수많은 사례가 모이면 물리학에서 말하는 복잡계를 이룬다. 모든 인간의 가치, 도덕, 욕망, 관계 등이 실타래처럼 얽이면 '자연'에 가까워진다. 무심한 상태에 이른다. 그런데도 어느 특정한 의도와 분석을 개입시켜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민심청취니, 여론조사니 하는 결과를 얻는다. 장님이 만지지 않은 코끼리 등이나 엉덩이는 코끼리 아닌가. 바로 이 만져지지 않는 더 많은 코끼리의 몸뚱이가 말하지 않는 다수의 '무심한' 민심이다.

더구나 작은 공동체의 중요성을 아무리 외쳐도, 지방분권을 요구해도 듣지 않으려는 사회 구조에서 이 민심을 체득할 길 없다. 절차상 민주주의라 해서 다수결로, 다수결이 갖는 가치 이상의 가치를 독점하는 제도로는 민심의 코끝이나 만지고 다 알았다고 자만할 밖에 없다. 선거가 대개 그러는데, 특히 참여율이 20~30%에 불과한 선거나 여론조사의 경우 그 결과에 따른 적용은 민심의 왜곡이란 증거라는 게 오히려 타당할 지경이다. 바로 "묻지 말라. 말하지 않겠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겠다.

그래서 다수이지만 말없는 지역과 작은 공동체와 소외된 사람들과 약자들과 부단히 대화를 해야 한다. 여론조사나 민심청취를 하지 말란 말이 아니라, 이것이 가진 허점을 채우는 방법이 대화 밖에 없다고 봐서다. 크건 작건, 어떤 의도든 '혁신'으로 가는 길은 대화다. 단언컨대, 솔직하고 동등한 입장에서의 대화 없이 혁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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