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봐와서 익숙한 것이 어느 날, 전혀 다른 의미로 가슴에 안기는 경우가 있다. 이번 사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에 어느 절을 찾아갔다. 그 절도 가끔 들르는 곳이어서 낯설 리 만무하고, 작년 이맘때도 들렀다. 초파일이면 거의 매년 다른 절에도 들렀고, 그 풍경은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 독경소리, 절 입구의 풍등, 소원성취를 비는 연등, 붐비는 사람들, 곳에 따라 특별한 행사가 마련되기도 하나, 대개 불교의식에 따른 절차가 진행된다. 그리고 절에 온 누구나 점심공양을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점심공양이 여느 때와 달리 눈에 환히 비쳤다. 진풍경이다. 근 1천명이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밥을 준비하고, 밥을 먹었다. 밥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며칠 전부터 몇 사람이 올까 조바심을 하면서 준비를 했을 거다. 쌀을 몇 가마니를 준비해야 하는지, 반찬은 무얼로 해야 할지 고민과 의논이 있었을 것이다. 일을 분담한다. 누구는 과일을 사고, 채소를 산다. 누구는 조리를 하고, 떡을 주문한다. 누구에게서 일부 식재료 보시를 받는 팀도 있을 것이다.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도 정하고, 설거지 담당까지 모든 것이 봉사로 진행된다.

밥 타는 줄은 길다. 뙤약볕이 강한데도 그가 누구든 줄을 서서 밥과 반찬을 받는다. 줄을 흩뜨리는 사람이 있어도 탓하지 않고 너그러이 바라보기만 한다. 그리고 비좁아 한발 내딛기도 어려운 방 한쪽 밥상을 차지하거나 마루에 걸터앉는다. 그 마저 없으면 그늘이 있는 맨땅에 엉덩이를 주저앉히고 밥을 달게 먹는다. 남녀노소, 가족, 외국인, 그냥 들른 등산객, 동네 사람들, 외지 말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 사이사이 분주히 음식을 나르고, 심부름하는 사람들은 곁눈 돌릴 틈이 없다. 누구도 이 밥을 주고 얻어먹는 수고로움을 탓하지 않았다.

신분이 뭐건 누구나 똑같이 같은 메뉴의 밥을 먹는다. 모두 서두르지 않고, 밝고, 진지하다. 만일 없어서 이렇게 줄을 서야했다면 서럽기 그지없을 일인데, 그렇지 않아서 여유가 있다. 때로 70객으로 보이는 영감님들이 슬쩍 가방에서 소주를 꺼내 나눠 마셔도 그리 밉상이 아니다.

짐작은 가지만 초파일 절간의 무료공양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한 날 한 시에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 모두 이러한 모습으로 점심을 먹을 테니, 그 광경자체만으로도 장관이다.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고 작은 감동이 일었다. 만일 누가 한날 동시에 수십 만 명이 탈없이 먹는 '무료점심'을 소재로 기네스북에 등재 한다고 해도 될 법하다.

그리고 왜 하필 밥일까. 차도 있고, 다른 간식 종류도 많이 있을 텐데, 뒷정리까지 손이 수없이 가야하는 밥인가. 밥을 내주는 절이나, 밥을 먹는 대중 간에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지 않을까 여긴다.

"밥이 제일이여"

사람에겐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업이며, 그것도 함께 나눠먹는 것에 대한 소중함이 부지불식간에 의례처럼 돼 버린 것 아닌가 멋대로 결론 내린다. '밥'이 많이 남아 '부'가 되고, 부를 쌓고 더하고 더해 '귀'가 되려는 것 아닌 그저 배불러서 소박한 평온과 상호 배려가 배어나는 틈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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