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자유언론실천재단 등 언론민주화단체 전국 선후배들이 광주에서 모임을 가졌다. '5.18과 언론'을 주제로 5.18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 심포지움에 참석차였다. 다만 행사 참석만 아니라 여러 단위의 단체가 모처럼 광주에서 회동하는 의미가 있었고, 광주의 추모 분위기를 보고자 했다. 모임의 좌장은 김중배 선생이었다. 이날 밤 몇몇 후배들과 함께 하면서 여러 화제가 넘나들던 자리, 그의 거침없는 이야기는 '화쟁'에 이르렀다.

실마리는 심포지움 토론에서 나왔던 '일베'였다. 그는 일베를 무조건 손가락질 하면서 감정이 섞인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들이 왜 등장하게 됐고, 그러한 행태를 보이는가에 대한 철저한 탐구와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쟁이 없는 화가 없으나 단순히 싸우고 내치는 것이 아닌 극복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시국에 관한 앞선 이야기에서 화쟁에 대한 언급 후에 이어진 말이었다. 이해가 쉽지 않은 화쟁을 기자답게 명료하게 설명한 셈이다.

화쟁에 대한 번갯불 같은 사례가 5.18 당시에 있었다고 본다. 시민을 상대로 피떡칠을 한 공수부대가 물러나고 26일 계엄군의 진압작전 개시 전까지 며칠간 광주의 상황이 그것이다. 대동평화세상이라고 불리는 이 며칠은 폭력, 살인, 강간,방화, 절도 등이 일체 없었던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국가간, 민족간 뿐만 아니라 민족 내에서 정치폭력이 자행될 때 진영간, 계급간, 사적 감정으로 일어나는 잔인한 폭력에 비해 그렇다. 당시 한국전쟁의 뼈아픈 경험을 거친 나이든 사람들이 이 상황에 눈물로 감격하던 것을 봤다. 갈등을 내면화 않고, 민중끼리 펼친 대동세상. 단순히 억압에 대한 투쟁만 있었다면 5.18 항쟁이 아시아 민주화에 이처럼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화쟁이 5.18정신의 가장 큰 핵심이고, 이것 없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 평등, 인권으로 승화는 어렵다.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신영복 선생은 저서 '강의'나 '담론' 등의 강의를 통해 화이부동(和而不同) 동이불화(同而不和)에 대해서 강조했다. 그가 화에 대해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원리라고 했다. 동은 상대를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패권주의의 원리라고 비교했다. 그는 "신대륙의 발견(이것도 그들 시각이다)이후 지금까지 서양근대사는 동의 역사였다. 종교도 언어도 자기 것을 강요하고 세계를 유일하게 지배하는 체제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목숨으로 지킨 5.18정신, 대동평화정신도 시간이 흐르면서 세속화, 물질화의 길을 걷고 있다. 유가족, 부상자, 구속자 등 관련자들이 돈으로 보상을 받을 때부터 세속화는 기정사실화됐다. 그 후 의례화 되면서 일부가 이해관계에 따라 싸우고 이합집산하는 모습이 많았다. 책임자가 아직도 가려지지 않았으니, 정권에 따라 5.18정신을 외면하고 말살하려는 기도도 노골적이다. 정치인들은 5.18정신을 혹부리 영감 혹처럼 필요하면 뗐다, 붙였다 멋 대로다. 최근 무기계약직을 고용하고, 해고한 5.18기념재단이나 이에 대해 투쟁으로 맞서는 모습까지 더해지고 있다. 과연 화이부동인가, 동이불화인가.

나는 80년 당시 학생회에 있었고, 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일 때 도피하고 말았다. 따져보면 화쟁이니 뭐니 논할 자격이 사실상 없다. 이러한 마음으로 35년이나 흘렀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