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맛'은 불가분의 관계이면서 전혀 다른 함의를 갖는다. 밥은 생존적 의미가 강하다. 때로 정치, 사회경제적으로 뜻이 확장된다. 어쩔 땐 구호가 되기도 한다. 학교급식이나 '밥이나 먹자'에서 그런 성격들이 나타난다. 유명한 '빵(밥)을 달라'는 말은 혁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민생이 밥으로 대표되고, 약간 변형돼서 곡기가 되면 죽고 사는 지경에 이른다. 세끼 밥을 먹을 정도면 어느 정도 사는구나하고 여긴다. 밥과 맛이 합쳐지면 욕도 된다.

맛은 신체의 확장, 감각의 확장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식으로 플랫폼 또는 통로에 가깝고 관계적이다. 보다 유희적이고 문화적이다. 아주 개별적이어서 정체성이 강하고 따라서 편견이 심하다. 어느 반찬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2차, 3차 등 승수적이면서 가능성이다. 외부의 먹거리를 받아 들여야만 생존하고 그에 따르는 맛은 인간 존재 그 자체 또는 살아있음의 실현이고 체험이다.

사람은 5가지 맛을 느낀다. 달고 쓰고 맵고 시고 짠 맛이다. 단순히 5가지 맛의 조합만 120가지다. 각각의 맛들의 정도가 셀 수 없으므로 맛은 헤아릴 수 없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감이 같이 거든다. 식감이라는 통각(촉각)에다 냄새(후각)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모양(시각)이 어떠냐, 차갑냐 따뜻하냐가 영향을 준다. 술집 맛은 주모가 절반이라는 말처럼 음식을 내주는 사람들과 그 태도, 식당이면 시설과 분위기도 맛을 바꾼다. 친절한 말 한마디(청각)가 양념 이상이다. 먹는 사람의 그 때 심리적 상태에 따라 산해진미도 모래알 씹는 것이 된다. 음식에 대한 정보(이야기) 역시 그렇고,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맛은 다르다. 음식 값은 또 어떻고. 맛을 내려고 온갖 재료와 상상이 동원된다.

밥처럼 맛도 죽을 때까지 절연할 수 없다. 또 계속 무한 반복으로 채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산업적으로 보면 맛을 주제로 하거나 매개로 하는 것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해남이 맛으로 뭔가 승부를 낼 근거가 여기에 있다. 대개 해남 음식이 맛있다고 한다. 물산이 풍부해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관광객을 끌어 들이기 위한 미끼로 '음식 맛'을 대면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또는 우리끼리 입맛에 맞으면 됐지 하는 편견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음식은 식당주인에게 맡기고, 모범음식점 패나 하나 걸어주면 할 일 다 했다고 여기는 게으름 탓인가 싶기도 하다.

해남 음식 맛은 감칠 맛, 발효의 곰삭은 맛, 뚝배기 같은 분위기 맛이다. 감칠맛이야 정형화 되지 않은 레시피, 손끝에서 나오는 맛이다. 여러 대에 걸쳐 축적된 솜씨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겠다. 발효는 소화되기 이전에 세균이나 곰팡이가 먼저 분해시키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냄새나 모양새는 좀 그렇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라 맛을 들이면 중독성이 있다. 해남의 음식은 차림새가 날렵하고 도시적이지는 않다. 조금은 뚱하면서도 아랫목 같다.

맛이 헤아릴 수 없고, 워낙 개별적이라지만 이제 해남 맛을 연구하는 그룹이 생길 법하다. 맛이 관계 지향적이고 문화적인 영역이면, 해남 문화 일반의 중요한 대상으로 다시 보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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