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8일, 우슬공원에서 전국노래자랑 방송 녹화가 있었다. 비가 제법 오고 바람도 불었다. 그래도 1회용 비옷을 입은 군민들이 무대 주위를 채웠다. 그 뒤로 형형색색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이 에워쌌다. 운동장 메인스탠드는 비가림이 돼서 이미 꽉 찼다. 사람들은 방송국에서 나눠준 풍선 짝짝이를 들고 노래에 따라 박자를 맞췄다. 자기 마을 사람이 출연하면 열띠게 호응을 해줬다.

5백명 훨씬 넘게 참석을 했다. 비오는 날씨인데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한 탓인지 젊은이들은 별로 안보이고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흥이 난다. "노래하자 꽃 서울...하늘은 오렌지색..." 뽕짝에 맞춰 박자와 리듬을 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읍에 산다는 60대 후반 쯤의 아주머니(할매?)는 "내가 노래를 잘하는디...지금은 몸이 안좋아. 몸만 좋았으면 출연했어"라고 장담하며 몸을 흔든다.

최경숙씨인가. 젊은 편인 이 출연자는 주황색 원피스에 하얀 자켓을 걸쳤다. 출연자들은 비를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다. 탄식이 나온다. "이쁘게도 입었구만 비를 다 맞네" 햇빛이 충만한 5월 가까운 때이니 비만 안왔으면 하얀 옷과 웃음이 빛났을걸. 해남아가씨란 노래도 나왔다. 처음 들었는데 하사와 병장이란 듀엣이 불렀던 노래다. 참석한 나이든 군민들, 한때 미끈한 해남아가씨, 청년들이었을 거다. 뿐만 아니고 클래식도 전통문화에도 숨은 조예와 안목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비가와도 객석은 한마을 사람들끼리 정담이 넘친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끼리 안부가 오고간다. 사소한 말다툼도 있고, 활기 있는 웅성거림이 끊임없다. 꼭 공연을 안 봐도 즐거운 사람들. 해남에 5백여 개 마을이 있지만 마을별로 몇이나 사는가. 혼인, 환갑, 생일, 명절의 살 냄새나는 부대낌이 사라진, 마을은 과거에 비해 사실 고적한 곳이다.

노래방이 전국에 걸쳐 석류 알처럼 박힌 곳이 우리나라다. 심지어 이 문화가 외국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그만큼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요즘 유행하는 수준 높은 노래배틀이 아니면 어떠리. 뽕짝에 어깨 들썩인들 무슨 흉 될 리 없다. 오케스트라. 뮤지컬, 오페라, 현악 4중주가 별로 부럽지 않다. 대상 받은 사람이 가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다시 우리 이웃들이다. 모여서 뒤섞이며 우러나오는 흥이 있을 따름이다. 그런 노래자랑대회를 보고 있으니 잔치가, 동네잔치가 그립다. 나도 그렇고, 나이든 그들이 그래 보인다.

때로 흥이나 신명이 풀어지지 않고 막히거나 고이면, 슬픔과 분노의 에너지가 된다. 노도가 되어 세상이 뒤바꿀 수도 있다. 우슬경기장엔 내년에도 어김없이 피울 분홍색 겹벚꽃이 마지막 안간힘으로 아름답게 바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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