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개그우먼 김미화씨가 한 신문 인터뷰에서 “나도 호주제 피해자”라는 용기있는 고백을 했습니다.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으로서는 밝히고 싶지 않은 개인문제를 세상에 드러낸 것이지요. 초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김미화씨는 어머니의 성을 쓰게 됐고, 호적상으로는 어머니가 동거인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재혼한 뒤로는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수치심을 겪는 등 여러가지 힘겨운 경험을 했다고 하더군요. 또 그녀는 “모든 현실적인 상처를 왜 여성과 자녀들이 감수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자녀들에게 부모의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자유민주, 양성평등사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요건” 이며 “호주제 폐지는 가족의 해체를 막고 그에 따른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했습니다.
호주제 피해자로서 피눈물을 흘렸다는 개그의 여왕이 인터뷰에서 보여준 모습은 의연함 그 자체였습니다. 여성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전문적인 여성운동가도 아닌 그녀는 이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과 소외를 받는 모든 여성들의 일반적인 문제로 이해해달라고 했더군요.
이 신문 기사를 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둘째 아들이 묻더군요. “엄마, 호주제가 뭐야?” “호주는 그 집의 주인을 뜻하는 말이야.” “그럼 우리 식구 전부잖아.”
21세기에 민주시민 교육을 받고 크는 중2 아들에게는 우리집의 주인은 우리가족 전부라는 인식이 당연한 거지요. “그래. 그 말이 맞지만 모든 식구들을 다 호주라고 할 수 없으니까 그중 대표선수를 호주라고 해. 호주는 가족을 이끌어나가고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을 말해” “그럼 아빠네.” “그래 맞아. 그런데 만약 아빠가 돌아가시면 누가 호주가 될까?” “엄마!” 아이의 입에서는 당연스레 아빠 다음엔 엄마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래. 네 생각에도 아빠가 돌아가시면 엄마가 가족의 선장이 되는 게 당연하지? 근데 현재의 호주제는 아빠가 돌아가시면 그 집의 장남이 호주가 되게 되어있어.”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왜? 장남이 어려도? 엄마가 돈을 버는데도? 그럼 엄마는 뭐야?”
“엄마는 동거인.”
아이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그럼 호주제는 남자가 왕이었던 시대의 법이냐고 묻더군요. “아니. 호주제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일제시대래.” “근데 왜 안없어져?” 단군할아버지때부터의 전통도 아닌데 왜 호주제를 없애지 않느냐면서 아이는 궁금해하더군요.
호주제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호주제를 폐지하면 가족해체가 가속화될 거라고 우려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호주제가 있는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호주제가 없는 국가보다 월등히 높다고 합니다. 호주제가 있는 우리나라의 가족해체가 휠씬 심각하다는 거지요.
호주제를 없앤다고 해서 족보나 혈연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외국에 입양된 아이들이 고국의 부모를 찾으러 왔다는 방송을 봅니다.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그들이 자기를 버린 부모가 그리워 찾는다고 울먹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역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핏줄은 그런 거지요. 어디에 살든 누구의 성을 쓰든 내 아버지 내 어머니는 버릴 수 없는 내 핏줄이니까요.
중앙일보의 설문조사에서 호주제 수정 또는 폐지 의견이 80%나 되고(2003.5.12),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올 4월16∼5월16일까지 한 조사에서도 호주제 페지 찬성이 70.2%나 됐습니다. 변화된 사회에 맞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지요.
때마침 국회에서도 5월 27일 호주제 폐지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법의 근본정신은 인권보호라고 합니다. 특히 약자의 인권보호야말로 법의 우선과제지요. 그런데 그 법을 고치고 없애는 힘은 국회의원에게 있습니다. 우리지역 국회의원이 호주제폐지를 찬성할지 아니면 반대할지 참으로 궁금하군요.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고 세상에 남겨진 아내와 아이들, 험한 세파를 이겨내기 위해 재혼을 택하는 아내, 그렇게 해서 새롭게 한 가족이 된 부모와 아이들 모습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보편적인 게 되었습니다. 21세기의 주역이 될 그 아이들에게 7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김미화씨와 같은 피눈물나는 고통을 물려주어서는 안되겠지요. 해남의 여성단체와 국회의원이 사회적 약자인 그들을 대변해서 호주제 폐지의 목소리를 내주길 기대해봅니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