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새해 첫날을 일요일에 맞이한 계묘년(癸卯年)이 또다시 일요일에 역사의 한 켠으로 물러난다. 사흘 후면 청룡의 해 갑진년(甲辰年) 첫날의 태양이 해남에서 용솟음친다.

우리 조상은 삶의 터전인 한반도를 중국 대륙 중심으로 내려다보는 사대주의(事大主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힘없는 조그만 나라의 생존 전략이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치며 DNA로 체화됐다.

역사는 때로 퇴보하지만 정반합(正反合)을 거치며 조금씩 진화를 거듭한다. 그 진화는 사고가 이끈다. 꽉 막힌 대륙을 올려다보는 시각은 전근대적이다. 이젠 확 뚫린 대양(大洋)을 내려봐야 한다. 그게 진취적이고 열린 시각이다. 이런 세계관의 중심에 해남이 위치한다. 해남은 대양을 향하는 출발점이자, 대양에서 들어오는 한반도의 시작점이다.

해남은 드넓은 대지가 뿜어내는 무궁무진한 자산을 갖고 있다. 그 자산이 아직은 덜 다듬어진 옥과 같다. 천년고찰 대흥사를 품은 두륜산, 미황사에서 시작되는 달마고도의 달마산, 갈두산, 주작산, 흑석산, 병풍산, 금강산은 천혜의 자연보고이다. 그 정기(精氣)는 수많은 문인을 배출한 모태가 되고, 풍부한 농산물의 자양분이 됐다. 해남의 땅덩이는 1000만이 모여 사는 서울의 두 배에 가깝다. 남쪽 바다를 품은 해남이라는 이름은 바다 못지않게 넓은 대지에서 수많은 역사를 써왔고 앞으로도 뿜어낼 것이다.

해남에는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숱한 자랑거리가 있다. 이 가운데 평생 해남을 향한 애정으로 살아온 대선배의 한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 해남의 현대사에서 자랑거리로 해남YMCA와 해남신문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YMCA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사회운동의 거목(巨木) 이준묵 목사에 의해 출발했다. 이 목사는 31년간 YMCA를 이끌면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잠자는 해남을 일깨웠다.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역대 이사장과 총무들은 지역사회와 꿈나무들의 길라잡이를 자임했고 약자를 돌보며 농촌·농민의 대변자 길을 걸었다.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는 궤적에 YMCA가 그은 획은 남다르다. 해남을 지키든, 향우로 살아가든 많은 해남인이 YMCA를 잊지 못한다.

YMCA의 족적에는 해남신문 창간도 한 축으로 남아있다. 해남의 공동체를 이루고 민주화와 지방화 시대의 열망을 해남신문에 쏟았다. 500명 가까운 발기인이 참여해 창간을 알리는 소식지가 1989년 11월 나왔다. 7개월 뒤 군민의 이름을 내건 창간호가 1990년 6월 22일자로 발행됐다. 해남신문은 지난한 과정을 헤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4년 가까이 해남신문의 편집을 책임지면서 애정 어린 질책과 격려를 숱하게 받았다. 그 무게감이 버겁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군민과 독자 입장에서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되돌아보면 자책이 떠나지 않는다.

그 회한이 더 깊어지기 전에 떠나고자 한다. 아울러 독자들의 많은 격려를 받았던 고정칼럼 '땅끝에서'도 접는다. 한 주의 제작이 끝나면 '다음 주제는'이라는 고민이 밀려왔다. 그게 160회에 이른다. 마땅한 주제가 가장 어려웠다. '시작이 절반이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언젠가는 '땅끝에서'가 독자에게 다시 찾아가길 기대한다.

앞으로도 해남신문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사랑과 주마가편(走馬加鞭)을 부탁드린다. 사랑과 채찍은 해남신문이 올곧게 나아가게 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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