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14대 임기를 마친 고 이주일 국회의원이 본업인 코미디언으로 돌아가며 했던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여기(국회)에는 나보다 더 코미디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4년 동안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간다."

16, 17대 총선(해남·진도선거구)에서 내리 당선된 고 이정일 전 국회의원은 생전에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여의도에 가보니 그 많은 국회의원 중 나라 걱정하는 애국자는 단 한 명도 없더라."

해남·진도 총선(12, 13, 15대)에서 1승 2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둔 진도 출신 고 정시채 국회의원은 장관(농림부), 대학(초당대) 총장도 지냈다. "세 자리 중 권한은 많고 책임이 없는 국회의원이 가장 좋더라. 그래도 일 많이 한 장관으로 불리고 싶다."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국회의원선거로 향하는 시계가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면서 바삐 돌아가고 있다. 비례대표 47명을 포함해 300명을 뽑는 총선이 딱 111일 남았다. 국회의원 정수를 두고 더 늘려야 한다, 대폭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확대파'는 인구수 대비 OECD 꼴찌 수준으로 국민의 대변자가 적다는 점을 내세우고, '축소파'는 정작 할 일은 내팽개치고 세금만 축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데 국회의원 수가 모자라서 국회가 '이 모양 이꼴인가' 싶기는 하다.

요즘 땅끝 해남에서 벌어지는 정치 얘기가 전남을 넘어 중앙 무대에 끼어들었다.

하나는 '정치 9단'이라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이야기이다. 해남에서 가진 출판기념회에서 신당 창당 행보에 나선 이낙연(전 전남도지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향해 "미쳤다, 미쳤어"라고 했다. 그러면서 "10리도 못가 발병 날 그 길은 가지 말라"고 충언했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선거용 실탄을 모으고 세도 과시하는 공식 출정식이다. 이런 점에서 제대로 몸 풀었다고 본다. 해남문예회관 대공연장 700석이 모자라 200석 정도인 옆 다목적실도 가득 차고 통로와 입구 그리고 얼굴만 비치고 간 사람을 헤아리면 얼추 3000명은 찾았다고 한다.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해남에 오고 기삿거리가 될 말도 쏟아내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하다. 요직을 두루 거친 박 전 원장은 언젠가 국회의원이 가장 매력 있는 자리라고 했다. 4선에 도전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1985년 정시채 의원에 이어 39년 만에 진도 출신이 해남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다.

또 하나는 정의찬 이재명 민주당 대표 특보의 이야기이다. 그는 공직선거 후보자 검증위원회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가 하루아침에 부적격으로 뒤바뀌었다. 1997년 남총련 의장 당시 전남대에서 발생한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에 연루된 이유이다. 이재명 죽이기에 혈안이 된 보수언론 융단폭격에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정 특보는 현장에 없었고 폭행을 지시하지도 않았으나 모든 책임을 짊어졌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공안사건으로 분류돼 사면복권도 받았다.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 억울함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수많은 정치인이 갖은 비난과 전과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것을 지켜보면서 유독 신인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도 실감했으리라.

가히 정치의 계절이다. 해남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국의 이목이 쏠리는 총선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선량을 뽑는 유권자는 지역민이다. '그들의 리그'에 휩쓸리지 않는, 우리만의 냉철한 판단을 하는 현명함이 여느 선거보다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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