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四字成語)와 고사성어(故事成語)는 비슷한 듯하나 엄연히 다르다. 사자성어는 네 글자로 이뤄진 한자어라고 하지만 요즘엔 개념이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고사성어는 한자의 뜻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서 유래한 말이다.

1990년대 정치판에서 만들어져 30년 가까이 유행어로 자리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는 순우리말(내, 남)과 영어(romance), 한자(不)가 혼합된 하이브리드형 사자성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한자어로 바꾼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2020년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기도 했다. 연말연시에는 다사다난, 송구영신, 근하신년, 만사형통 등이 빛을 발한다. 언론은 '정론직필'(正論直筆·바른 주장을 펴고 사실을 그대로 씀), '불편부당(不偏不黨·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음)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고사성어도 주로 네 글자로 이뤄지긴 하지만 두세 글자나 다섯 글자 이상도 많다. 완벽(完璧·흠이 없는 구슬)이나 모순(矛盾·막지 못하는 창과 뚫지 못하는 방패), 배수진(背水陣·물을 등지고 군대 진지를 구축함),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잠)이 이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고사성어도 많다.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보낸 함흥차사(咸興差使), 연산군이 흥청(기생제도)에 의해 망했다고 해서 나온 흥청망청(興淸亡淸), 억불정책에 천인 신세로 전락한 이판승(수행)과 사판승(잡역)의 끝장 인생을 두고 만들어진 이판사판(理判事判) 등이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논어 '헌문편'(憲問篇)에 등장하는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비튼 이 말은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이다. 전국 대학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응답자의 30.1%(396표)를 얻었다고 했다.

'견리망의'를 추천한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중어중문학과)는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며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견리망의'의 바탕에는 후안무치(厚顔無恥), 선사후공(先私後公)이 깔려있다. 사실 논어에 나오는 같은 음절로 '이로움을 보자 (알면서도)의로움을 내팽개친다'는 의미의 견리사의(見利捨義)가 더 직설적인 표현이라는 생각도 든다.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견리망의에 이어 '적반하장'(賊反荷杖·도둑이 도리어 매를 들다·25.5%), '남우충수'(濫芋充數·피리를 불 줄 모르는 사람으로 숫자를 채우다·24.6%), '도탄지고'(塗炭之苦·흙탕이나 숯불 속에 떨어졌을 때처럼 괴롭다·11.8%), '제설분분'(諸說紛紛·여러 의견이 뒤섞여 혼란스럽다·8.1%)이 2~5위에 올랐다.

요즘 세상을 보노라면 숱한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집권 2년 차인 윤석열 정부에서는 유아독존(唯我獨尊·자기만 잘났다고 뽐내는 태도), 난신적자(亂臣賊子·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 목불인견(目不忍見·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음)이 아른거린다. 정치권은 난형난제(難兄難弟·비슷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어려움), 이전투구(泥田鬪狗·진흙탕 싸움), 지리멸렬(支離滅裂·이리 찢기고 저리 흩어짐)의 형국이다. 이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노심초사(勞心焦思·속이 타들어감)가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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