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달력이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을 알려준다. 새해 벽두엔 으레 무슨 띠, 무슨 해를 생각하며 한 해를 시작하지만 마지막 달력 앞에 서면 가물가물하기는커녕 아예 한 줌의 기억마저 남지 않는다. '뭐였더라' 하며 찾아보니 2023년은 토끼의 해인 계묘년(癸卯年)이다.

연말의 12월 달력, 연시의 1월 달력에 보름 간격으로 적힌 24절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추워진다. 어제(7일) 대설에 이어 다가오는 동지(22일), 소한(1월 6일), 대한(1월 20일)이라는 동장군(冬將軍)이 줄줄이 진격을 예고하는 듯하다. 동장군이라는 말은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패퇴하자 언론이 이를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라고 하고, 이를 일본이 한자로 번역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일본에서 소설을 쓴 것으로 보이지만 이보다 앞선 유래도 내려온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이끌던 왜군이 후퇴하면서 함경도 혹한을 두고 "조선에는 동장군이라는 또 다른 장군이 있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의 역설이기는 하지만 북극의 강력한 한파가 힘을 받으면서 한반도의 겨울은 동장군이 더욱 기세를 떨칠 것이다.

연말이 되면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어려운 이웃을 한 번쯤 살피는 나눔의 마음도 갖게 된다. 해남에서도 이맘때가 되면 김장봉사가 줄을 잇고 각계에서 성금이 답지한다. 봉사활동이나 기부는 웬만해서는 선뜻 다가서질 않는다. 그래서 이를 실천하는 참모습에서 존경심이 저절로 솟아난다.

나눔과 베풂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미학이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이 있다. 궂은일, 힘든 일을 다 해 돈을 벌더라도 쓸 때는 보람있게 써라는 경구이다. 가장 보람으로 남는 게 바로 나눔이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은 열 사람이 한 술씩 덜어내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말이다. 여러 사람의 조그만 관심이 모이면 큰 결과를 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은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나눔의 정신은 동물에게도 베풀었다. 감나무에서 익은 홍시를 다 따지 않고 몇 개 남겨 놓은 게 까치밥이다. 추운 겨울 먹이가 없어 배고픈 날짐승을 위한 배려이다. 소설 '대지'의 작가이자 노벨평화상을 받은 펄벅 여사가 1960년 우리나라를 방문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감탄한 풍경도 있다. 소달구지에 짚단을 싣고 가면서 농부도 지게에 짚단을 잔뜩 짊어지고 지나가는 모습이다. 힘든 소를 위한 나눔의 미학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이웃을 돌아보는 '희망 2024 나눔 캠페인'이 '기부로 나를 가치있게, 기부로 해남을 가치있게'라는 슬로건으로 두 달간 펼쳐지고 있다. 이 캠페인은 원래 '불우이웃 돕기 성금 모금'으로 진행되다가 24년 전인 1999년부터 '희망 ○○○○ 이웃돕기 캠페인'으로 바뀌고, 2007년 지금의 이름으로 정착했다. 이웃돕기라는 온정의 의미에서 나눔이라는 사회투자의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해남에서는 2억2900만원의 목표로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다. 군민 한 사람이 3541원꼴로 동참하면 사랑의 온도탑이 100도에서 펄펄 끓게 된다.

서양의 어느 저자는 '행복한 기부'에서 나눔을 '2-1=3'이라는 수식으로 표현했다. 기부와 봉사는 나눌수록 커지고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말이다. 사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크다고 한다. 연말연시에 나눔이 선사하는 기쁨은 삶을 더 풍성하게 하고 싱그럽게 다가올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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