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봇물 터지듯 곳곳에서 열린다. 해남에서도 예비 후보자들이 이미 마쳤거나 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4년 만에 찾아오는 총선의 계절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휴대폰에는 '출판기념회', '북 콘서트', '북 토크 콘서트' 등의 제목을 단 초청 문자메시지가 저 멀리 수도권에서도 수시로 들어온다. 이름만 간신히 알 정도이거나 처음 들어보는 인사가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아냈는지 모를 일이다.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지만 묘한 기분으로 다가온다.

출판기념회는 원래 작가가 자신의 책을 주제로 강연하고 질의응답을 하며 독자와 소통하는 자리이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여러 측면에서 이와 사뭇 다르다.

책 내용이 대부분 자전적 에세이 성격을 띤다. 성장 과정이나 인생과 정치철학이 담겨 있다. 자서전이라고 하지만 집필자가 저자, 곧 정치인인 경우는 거의 없다. 대필자가 구술과 자료에 의존해 쓰고 저자는 나중에 감수만 한다. 정치인의 자서전을 전문적으로 집필하고 발간하는 컨설팅 회사도 넘쳐난다.

정치인이 선거를 앞두고 너도나도 출판기념회를 연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아무런 법의 제약 없이 정치자금을 끌어모으는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금액 한도나 모금 액수 제한이 없는 데다 선거일 90일 이전까지는 몇 번을 열어도 괜찮다. 내역 공개나 과세 의무도 없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할 필요도 없어 그냥 쌈짓돈으로 삼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이를 보다 못한 검찰이나 선관위가 정치관계법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을 냈으나 칼자루를 쥔 국회는 이를 여지없이 깔아뭉갰다.

출판기념회에 다니다 보면 빈손으로 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책값 명목으로 선거자금을 후원하는 자리이고. 2만 원 안팎의 정가만 달랑 내기도 어렵다. 한 권만 가져와도 10만 원 정도는 낸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업가라면 수백만 원을 건네기도 한다. 이게 한두 군데가 아니니 초청장이 곧 청구서처럼 달갑지 않게 다가오고 발걸음도 가볍지 않다. 애당초 읽으라고 발간한 것도 아니다. 참석자도 눈도장, 아니 돈도장만 찍고 가면 된다.

출판기념회 목적의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을 알리는 창구이자 세 과시용이다. 주로 출마 예정지에서 열기 때문에 정치 신인에게는 유권자에서 자신을 알리는 아주 효과적인 기회이다. 현행 선거법이 모든 경우의 수를 구체적으로 담아내기 어려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선관위 직원도 잘 모르고, 해석이라도 해달라면 무조건 '안 된다'는 답변만 되풀이한다. 이러니 가뜩이나 높은 장벽에 가로막힌 신인에게 출판기념회는 그나마 '가뭄에 단비'만큼이나 반갑고 자유스럽다. 여기에다 참석한 인파는 정치인의 기반이나 위상을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된다. 수천, 수만 명이 다녀갔다는 말이 세간에 돌면 이를 토대로 선거 전망을 하기도 한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되는 건 아니다. 정치 신인에게 얼굴 알리는 자리이기에 어쩌면 환영받아야 마땅하다. 그래도 취지를 살리려면 정가 판매나 구매 한도 설정, 수익금 신고 등 제도적 개선책이 있어야 한다.

모두에게 민폐라는 것을 다 아는 정치인 출판기념회.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일 90일 전, 곧 1월 10일까지 출판기념회는 전국 곳곳에서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서 내편, 네편을 갈라치기 하며 '끼리끼리 정치판'을 만들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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