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기차에 대한 로망이 있다. 기차여행이 낭만으로 다가오지만 정작 고향에선 기차 구경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에는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는 속담이 어느 정도 적용된다.

보성 득량이 고향으로 광주로 중학교 유학을 한 어느 친구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버스도 다니지 않던 벽촌에서 십리 길을 걸어 도착한 득량역에서 광주행 완행열차를 타야 했다. 화순 능주로 향하는 노선에는 꽤 경사진 구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전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곳에서는 기관차 힘이 달려 승객들이 내려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버스를 타고 광주 가는 게 로망이었다.

해남사람의 기차를 향한 로망은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동요에서 나름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아기 아기 잘도 잔다/칙칙폭폭 칙칙폭폭/기차 소리 요란해도/아기 아기 잘도 잔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1947) 윤석중이 경부선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중 철길 옆 판잣집에서 잠자는 아이 모습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기차는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는 희망의 끈, 오막살이는 지질이도 가난한 삶, 여기서 단꿈을 꾸는 아이를 그렸는지 모른다.

복선 철로의 기차를 눈여겨 보면 좌측 선로를 따라 달린다. 자동차와 보행이 우측통행인 점과 다르다. 초기 철도가 일제강점기에 부설된 탓이다. 해방 이후 통행 방향을 자동차처럼 바꿀 만도 하지만 신호체계, 안내판, 배선까지 전부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나중에 들어선 지하철은 우측통행으로 설계됐지만 서울역을 통과하는 전철 1호선만큼은 좌측으로 운행해야 한다.

우리나라 철도 노선을 보면 전남의 남부에 위치한 해남, 영암, 강진이 이상할 정도로 빠져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경전선을 만들 때 목포~해남~보성이 들어갈 만도 하는데 말이다. 근데 '기차 불모지'인 해남에서도 드디어 내년 말이면 기차를 만나볼 수 있게 된다. 목포 임성~계곡(해남역)~보성으로 이어지는 기찻길이 개통하기 때문이다. 다만 해남읍을 통과하지 않아 '100년의 로망'이 얼마나 충족될지는 모른다. 그래도 해남에서 기차를 구경할 수 있으니 반갑기 그지없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목포나 나주에서 해남으로 KTX 노선을 연결하고 해저터널을 통해 제주로 가는 방안이 구상되고 있다. 그 첫 단추가 오는 2025년께 결정되는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되는 것이다, 일단 국가계획에 들어가면 선례에서 보듯 우리 세대, 아니면 다음 세대가 되든지 언젠가는 실현된다. 목포~해남~보성 철도도 2011년 발표된 2차 계획에 반영되어 내년에 빛은 보게되니 말이다.

해남~제주를 잇는 KTX는 그 무게감이 여느 철도와 다르다. 해남이 철도 사각지대에서 일약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다. 호남에서, 영남에서 제주에 가려는 사람들이 해남에 모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길은 숱한 난관이 가로놓여 있다. 2011년 국토해양부의 타당성 조사를 넘지 못해 2021년 4차 구축계획에 실패하고 5차에 재도전하지만 여건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장담하지 못한다. 사실 해남~제주 간 해저터널은 전 국민이 바라는 일이다. 연중 40일 정도는 궂은 날씨로 제주공항의 비행기가 뜨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남 뿐 아니라 호남, 전국적인 현안으로 접근하면 신기루에 머물지만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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