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상 (광주생명의숲 공동대표)

가끔 참석하는 지역사회의 행사나 교육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기념사진이다. 이 기념사진이 출석부나 다름없다. 또 이러한 기념사진이 그대로 언론매체에 전송돼 지면에 게재되기도 하니 중요한 프로그램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기념사진을 촬영해야 그 행사가 끝나는 것이다. 가끔은 중요 인사가 다른 일정 때문에 행사장을 떠나야 하니 프로그램 순서를 바꿔 기념사진 먼저 촬영하자는 사회자의 멘트도 들린다. 좌석을 정리했다가 원위치해야 하니 주최 측이나 참석자나 고약한 상황이다.

이제는 동호회나 동창회 등 각종 모임에서도 반드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SNS에 올리기 위함이다. 꼭 한 두 컷은 참석자 전원이 나와야 한다. 단 한 명도 빠져서는 안 된다. 촬영자도 현장에서 섭외한다. 참석자 인증이 필요한 인증사진 그 자체인 것이다.

35년 전부터 20년간 사진으로 밥을 먹고 살았으니 사진에 관한 한 전라도 사투리로 뉘나고도 남음직한 세월이다. 그 세월에 사진의 변화를 오롯이 지켜볼 수 있었다. 디지털화된 사진과 디지털사진을 신문제작과정에서 경험했고 선도했다. 카메라를 갖고 있는 가정이 드물 정도로 고가인 필름카메라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전국민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다. 60대들은 가정현황 조사서에 TV, 카메라가 있는지를 표시해야 하는 시절도 경험했다.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필름을 스캔한 디지털화된 사진이 신문사 등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고 곧이어 휴대폰, 스마트폰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제 스마트폰 카메라로 출판사진을 대체하는 시대가 왔다. 행사를 주관하는 기관, 단체가 이제 사진 전문가를 부르지 않고 직원이 촬영한 스마트폰 사진을 언론매체에 전송하는 시대가 왔다. 간단한 이미지 처리 앱을 이용해 리터치까지 수행하는 세상이다.

'적자생존'을 패러디한 '찍자생존'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찍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관광지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스마트폰 카메라는 위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가족회식에서도 가장은 자식들이 음식을 촬영한 후에 식사를 시작해야 하는 시대다. 음식 먹는 방송이라는 '먹방'이 먼저다. 아무리 가장이라 하더라도 '먹방'이 끝나기 전에 음식에 흠집을 내는 일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삼가야 한다.

정치인에게 사진은 마약과도 같다. 빠져들기 십상이다. 사진 덕을 보다가 사진 때문에 정치생명이 끝나는 사례를 흔치 않게 보아 왔다. 정치홍보를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정치인들은 가끔 '그림이 안 되잖아'를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머릿속에는 의정보고서 등 정치선전물에 게재될 사진거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치명적인 실수를 유발하기도 한다.

사고 현장에서의 기념사진 해프닝은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밟지 말아야 할 지뢰가 된다. 1997년 8월 KAL기가 괌에 추락한 사고가 있었다. 광주 지역구인 국민회의 한 의원이 유명을 달리했으니 여·야 의원들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때 신한국당 의원들이 잔해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다가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걸렸다.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 때는 안전행정부 모 국장이 진도 팽목항을 방문했다가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실종자 가족들에게 잠시 비켜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어 단 세 시간 만에 직위해제 당했다. 2022년 8월 서울 수해피해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국민의힘 모 의원이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는 막말도 있었다.

최근에 김건희 여사의 사우디 순방시 말 사진도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국격까지 거론하는 논평이 나올 정도로 비난이 거셌다. 퍼스트레이디의 해외순방사진관련 시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도대체 사진이 뭐길래 이러는 것일까. 사진(寫眞)은 진실을 베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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