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 소나'라는 관용적인 표현은 (적격 여부를 따질 것 없이)'아무나'라는 의미로 쓰인다. 개는 천하고 소는 귀한, 상반된 가치나 대접을 받는 두 동물을 빗대 생겨난 말이다.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는 속담은 소가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는지 말해준다. 지금은 기계화로 그 역할을 뺏겼다지만 살아서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 뿔 등 죄다 남겨주고 떠난다. 소똥은 거름이나 연료로 사용되고, 사골국을 좋아하는 탓에 뼈도 못 추린다. 그러니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소를 빗댄 속담이 넘쳐난다. '빈집에 소 들어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바늘 도둑 소도둑 된다', '소 닭 보듯', '쇠귀에 경 읽기', '쇠뿔도 단김에 뺀다' 등등. 예전에는 농촌에서 재산 목록 1호인 소를 팔아 자식 등록금을 댄 현실을 빗대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소의 뼈로 세운 건물)이라 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핏발을 세우며 내뱉는 '소가 웃을 일'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 소의 웃는 모습은 상상이 잘 안 된다. 요즘에는 웃을 일이 손톱만큼이나 있겠는가 싶다. 목초지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 복지농장도 있다지만 대부분 좁디좁은 축사에 평생 갇혀 지내야 한다. 그러다 몸값이 나갈 즈음엔 도살장에 끌려가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최근에는 여태껏 들어보지도 못한 '럼피스킨'이라는 돌림병으로 줄초상이다. 럼피(lumpy)는 혹투성이, 스킨(skin)은 피부·가죽을 뜻하기에 피부에 혹이 생기는 질병이다. 소에만 전파되는 바이러스성인 이 병은 남아프리카 잠비아에서 100년 전 처음 발견된 이후 유럽, 러시아, 인도, 중국으로 동진해 급기야 우리나라에 상륙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케냐에서 처음 보고된 아프리가돼지열병과 유사한 경로를 밟은 것이다. 모기, 쇠파리 등 흡혈 곤충에 의해 전파되는 럼피스킨병에 걸리면 치사율은 10% 이하이지만 비쩍 마르고 유산이나 불임 등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지정되어 있다. 치사율과 전염성은 대체로 정반대로 움직인다. 치사율이 높으면 전파율이 낮고, 치사율이 낮으면 전파율은 높아진다. 숙주가 감염되자마자 죽으면 그만큼 병균도 옮기는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럼피스킨병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10일 정도 사이에 경북을 뺀 전 지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지난주 해남의 한 한우농가에서도 의심 증상 신고가 접수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다행히 음성으로 밝혀져 한시름 놓았다지만 언제 뚫릴지 모를 일이다.

전염병에 걸리면 발병한 농장이나 인근 500m 이내의 농장에 있는 정상적인 소도 죄다 살처분되고 있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죽어 나간 소가 벌써 5000마리를 넘는다. 동물보호단체가 '묻지마 살처분'에 반대하고 나선 것처럼 듣는 자체로 끔찍한 살처분에 의문이 든다. 단지 피부병에 걸렸다고 생목숨을, 그것도 함께 있다는 자체로 순장을 하니 말이다. 동물단체는 감염된 소는 격리해 치료하되 부득이 살처분하더라도 안락사를 주장한다.

요즘 소의 수난을 보노라면 14년 전 개봉됐던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떠오른다. 워낭은 소나 말의 목에 달아놓은 방울이다. 그 소는 40년을 주인과 동고동락하고 평생 일하던 밭에 묻힌다. 예전에는 한 식구처럼 소중하게 여겼는데, 애먼 죽음에 내몰린 소가 애잔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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