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채(클럽)로 정지된 공을 쳐 홀에 넣는 운동이다. 각 홀의 마지막 코스인 그린(잔디를 짧게 깎은 구역)에 구멍을 낸 직경 108㎜의 홀에 공을 넣으면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를 끊어내는 느낌에 비유되기도 한다. 사실 홀의 직경을 108㎜(4.25인치)로 정한 데는 자주 허물어지는 홀에 손으로 공을 꺼낼 수 있는 최소 크기의 파이프를 꽂은 게 규칙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골프처럼 기복이 심한 경기도 드물다. 잘 풀리지 않는 365가지 이유 가운데 마지막은 '이상하게 안 된다'이다. 골프가 어려운 게 죽어 있는 공(정지된 공)을 살려내야 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자서전에서 "세상에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 가지는 골프, 자식, 미풍"이라고 했다. 당시 삼성 계열사인 제일제당의 '미풍'은 대상의 '미원'과 오랜 조미료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

코스를 도는 골퍼는 걷는 자와 걷지 않는 자로 크게 나뉜다.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대체로 나이가 든 장년층은 걷고 젊은 층은 카트(전동차)를 타고 움직인다. 캐디가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승차를 권유해도 따르지 않는다. 장년의 골퍼에게 건강은 더 절실하고 절박하기 때문이다. 골퍼가 도는 18홀 코스의 길이를 합하면 7㎞에 가깝다. 일반적인 보폭이 70㎝ 안팎이어서 한 경기를 치르면 1만 보는 거뜬히 걷는다. '걷기 일당'을 채운 셈이다.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이 거세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 유지에서 걷는 게 최고다. 조선 중기 동의보감을 펴낸 명의 허준은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는 좋은 음식이 낫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걷기가 더 낫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도 "최고의 약은 걷는 것"이라 했고, 영국 역사가 트레빌리안은 "나에겐 두 명의 주치의가 있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다"고 말했다.

걷는 목적이 단지 건강만 챙기려는 것은 아니다. 차분히 걷다 보면 여러 생각이 정리되고 신선한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걸으면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내면의 안정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명언도 많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루소),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니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찾는다면 나가서 걸어라. 걸을 때 천사들이 속삭일 것이다."(레이먼드 인먼)

신발을 신지 않는 맨발 걷기도 있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지구와 맞닿는다는 의미에서 어씽(Earthing)이라고도 한다. 제2의 심장이라는 맨발로 걷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해남군이 군민들의 걷기 활성화 차원에서 올해로 3번째인 걷기 챌린지를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폰 워크온을 통한 접수에 모두 735명이 참여했다. 오는 27일까지 15일간 하루 기준치인 7000보 이상 모두 10만5000보 넘게 걸은 신청자 가운데 마지막 날 목표를 달성한 300명을 선착순으로 선정해 해남사랑상품권 1만 원을 증정하기로 했다.

해남에서 걷기 운동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질병관리청이 지난해 기준으로 조사한 건강통계에 의하면 걷기 실천율(최근 1주일 내 5일 이상 하루 30분 이상 걷는 비율)은 33.1%로 나타났다. 전남 평균치(44.7%)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다. 해남에는 금강골, 대흥사 산책로, 오봉산 둘레길 등 걷기 좋은 코스가 널렸다.

걷는다는 것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보약이다. 이참에 자연으로 돌아가 걸으면서 자신도 찾아보는 길을 내딛어보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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