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가 오늘부터 19일까지 7일간 해남을 비롯한 전남 일원에서 펼쳐진다.

15년 만에 전남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이 올해로 104회를 맞았으니 역산해보면 1회 대회는 일제 강점기인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조선체육회(대한체육회 전신)가 창설되고 '전조선 야구대회'가 중학단, 청년단 등 10개 팀이 참가해 치러진 게 전국체전의 출발점이다. 우리나라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입장료(소인 5전, 대인 10전)도 받았다. 예상보다 인기를 끌면서 당시로는 거액인 200원의 입장료 수입으로 체육회 빚을 갚고도 남았다고 한다.

지금이야 전국체전이 언제 열리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등이 생기기 이전까지만 해도 종합스포츠대회 총아로 불렸다. 지방 언론사들도 특별취재팀을 꾸려 선수들의 활약상을 지역민들에게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전국체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지만 애초 유망 선수들의 등용문으로 큰 역할을 했다. 해남이 낳은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 바로 전국체전을 무대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심부름으로 제주도에 갔다가 우연히 체전 예선전의 수영 경기를 지켜봤다. 1등 기록이 땅끝 시골에서 개헤엄으로 익힌 실력보다 나을 게 없다고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전국대회에서 입상만 하면 서울에서 공짜로 학교에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해남고 1학년에 다니다 완행열차를 타고 상경했다. 서울로 간 이듬해인 1969년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에서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우승하며 양정고에 스카우트됐다. 수영 실력으로 공짜 학교에 다니는 꿈이 이뤄진 것이다.

조오련은 50개의 한국신기록을 수립하며 우리나라 수영의 전설로 남아있다. 10남매의 막내로서 아들 5명이 연달아 태어났다고 해 이름도 '오련'(五連)인 그는 해남으로 돌아와 생활하던 중 14년 전인 2009년 세상을 떠났으나 그 이름은 '조오련수영장'으로 여전히 고향에서 살아있다.

전국체전과 다음 달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전 개·폐회식 총감독을 해남 출신이 맡은 것도 눈길을 끈다. 문내가 고향인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이 개·폐회식 기획과 연출을 총지휘한 것이다. 박 감독은 지난해 도민의 날에 문화관광체육 분야 '자랑스런 전남인 상'을 받았고, 3년 전 해남신문 고정칼럼인 '해남광장' 필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해남 촌놈'을 자랑스럽게 여긴 그는 '맘마미아' '아이다' 등 뮤지컬 신화를 이룬 문화계의 거장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번 전국체전은 여러모로 해남과 접점이 많다. 체전을 밝혀줄 성화가 지난달 땅끝 맴섬광장에서 특별 채화되고, 강화도 마니산과 고흥 마로도, 목포에서 채화된 성화와 합쳐진 불꽃이 두 개의 체전을 밝혀주게 된다. 또 오늘 낮 12시부터 30분간 해남읍내에서 봉송행사를 갖고 개회식장인 목포종합경기장에 입성한다. 우슬체육관, 조오련수영장 등에서는 펜싱과 근대5종 경기도 펼쳐진다.

10월의 해남 들녘에는 한껏 고개를 숙인 벼가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수확의 계절을 맞아 해남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경기장을 한 번쯤 찾아보는 것도 찌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길일 것이다. 언제 다시 해남에서 열릴지 모르는 전국체전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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