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흔히 지방자치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수레바퀴에 비유된다. 어느 하나가 온전하지 못하면 지방자치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30년이 넘는 역사의 지방자치를 싣고 달려온 수레바퀴가 낡은 틀에 갇히면 주민의 행복과 지역 발전이라는 목표도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상호 의존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지상 명령을 가슴에 새기고 따라야 한다.

최근 해남군과 군의회의 행보는 삐걱거리는 수레바퀴가 연상된다. 지난주 열린 군의회 임시회에서 집행부가 제출한 제2회 추경안 1110억 원 중 15%인 166억 원을 잘라냈다. 추경안 삭감이 규모에서 초유라고 하더라도 예산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의회의 감시 기능을 두고 뭐라 탓할 수만은 없다. 근데 감시 기능이 자기모순에 빠지고 지역 발전에 역주행하는 수단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특화형 숙박시설 공모에 선정돼 80억 원이 들어가는 우수영유스호스텔 리모델링 사업을 보자. 2년 전부터 세 차례 추경을 통해 국비 40억 원, 군비 10억 원 등 50억 원의 예산이 군의회 의결을 거쳐 이미 결정됐다. 이번에 나머지 30억 원을 확보할 계획이 의회에서 전액 삭감되는 바람에 사업 자체가 허공에 붕 뜬 꼴이 됐다.

해남에서 건의해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으로 따낸 산이 솔라시도기업도시 내 김치원료 공급단지도 사업비 72억 원과 토지매입비(2만1800평) 36억 원이 잘려 나갔다. 평당 55만 원(감정가 78만 원)이 너무 비싸니 다시 깎아보라는 이유이다. 국도비 72억 원도 이미 받아놓은 마당에 참 난감하게 됐다. 해남이 주산지인 배추 등의 저장과 절임배추 가공시설이 들어서는 이 사업의 최대 수혜자는 배추농가이다.

이러다 보니 집행부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시군과 경쟁하는 전남 예선을 거쳐 중앙무대의 본선 공모에 선정돼 예산을 어렵게 따냈더니 의회가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굳이 공모사업을 할 필요성이 없고 동력도 떨어졌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의회 내에서도 스스로 신뢰가 무너졌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긴 하지만 할 말도 많은 모양이다. 집행부 실과장이 참석해 수시로 열리는 의원 간담회에서 제기된 의원들의 여러 의견이 무시되곤 한다는 것이다. 우수영유스호스텔 리모델링 사업은 진도의 대형 리조트와 경쟁력이 떨어지고 시설이 들어선 후 운영관리에 대한 검토가 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김치원료 공급단지 땅값 또한 간담회에서 수차 제기됐음에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불만이 깔려있다. 사실이 아니겠지만 일부 초선 의원들이 집행부에서 예우를 안 해주니 공무원 길들이기 차원에서 칼을 휘둘렀다는 말도 떠돈다. 결국 집행부의 설명과 설득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고, 의회 의견이 무시된 데 대한 응전이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추경 파동을 보면서 지방자치의 한 축인 의회가 지역의 발전을 위한 고민을 얼마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의회가, 군민이 무엇을 얻었는지 스스로 묻고 되돌아봐야 한다. 집행부도 분풀이식 군정 발목잡기라는 피해의식과 허탈감에 매몰되기보다는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해남의 지방자치는 집행부와 의회가 서로 밀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야 올바로 굴러간다. 저 앞의 군민을 바라보면 올바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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