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2학기 개학 후 2학년들과 동양철학 분야를 공부한다. 고교 교재 수준이 그렇고 그런 거라 수박 겉 핥기에 지나지 않지만 각 사상을 훑으며 '내 삶'과 연결시켜 보고자 애를 쓰는 중이다.

오늘은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지를 주고 자신을 분석해 보게 하였다. 최근에 읽은 '페트릭과 함께 읽기(미셀 쿠오)' 내용에 나오는 질문지를 활용해서 나는 무엇인지를 찾아보게 한 것이다. 아이들은 이 엉뚱한 질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이라 어렵다고 한다.

자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느끼는지, 뭘 듣고 보고 말하는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꿈꾸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노력하는지 등 열댓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내용을 풍부하게 채우는 아이는 거의 없다.

생각 없는 교육, 삶과 동떨어진 교육과정, 경쟁으로 다수의 패배자를 밑에 깔고, 승자마저도 생각의 무능에 빠져드는 노예화 교육, 꿈이 돈이고 권력 바라기인 천박한 교육, 배우는 학생이 가르치는 선생을 혐오하는 교육, 그 현장인 학교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사랑스러운 나의 학생들'과 지켜보아야 하는 나. 아이들은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런 걸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주문한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가끔이라도 이런 시간을 갖자고 한다.

철학에 굶주린 아이들, 철학이 무엇인지, 그런 게 뭔지 들어본 적 없기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내달리는 아이들 앞에 부끄럽고 미안하다.

최근에 이런 수업한다고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도 있었다. 인문계 고교에서 시험에도 나오지 않는, 과목조차 없는 그런 한가한 수업을 하고 있냐는 게 주 내용이었다. 시험도 적게 보고, 뭐 어쩌고 하는 게 부수로 깔렸으리라.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늘 이런 성장을 모색하는 수업을 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인문계 교육과 파행적 대학입시는 조속히 망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다. 말이 나와서 '작은 학교 살리기'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현재처럼 도시 아이들을 대여해 오는 방식으로는 그나마 버티고 있는 작은 학교에 독약을 주입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현재 해남군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 방식의 실체를 보면 지역 갈등과 공동체 분열, 이주민과 토착민 간의 주도권 싸움, 더 나아가 헤게모니를 둘러싼 분쟁으로 곪고 있지 않는가?

필자는 오래전부터 작은 학교 살리기 문제에 참여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남들이 귀 기울이지 않는 방식을 다시 제안한다.

학교 간 통합교육과정을 실현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섬 학교 간 통합교육과정으로 1주일의 반은 학교를 통째로 이웃 섬 학교로 옮기는 것이다. 그럼 그 섬 공동체에서 학교와 협력하여 아이들을 맡는다. 반은 다른 섬에서 맡아서 교육과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작은 학교의 문제인 친구 부족과 관계 형성 부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마을학교가 아이들을 키워내고, 섬 간 유대를 강화해 협력적 사업을 확대한다면 경제 효과도 커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면 단위로 확대하고, 관련성이 큰 학교끼리 확대해 간다면, 양질의 교육 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지역 학교가 서로 연결되어 미처 알지 못한 혁신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이러다 보면, 교육 피로감을 느끼는 도시의 학생들이 시골 유학으로 심신 치유와 호연지기를 키울 새로운 혁신 학교들이 탄생할 것이다. 이것은 지역이 고민하는 다양한 소멸 양상을 역전시킬 방인의 기초가 될 수도 있다. 지자체와 교육 당국의 고민이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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