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의 관객 수는 1761만명에 달했다. 2014년 7월 개봉된 명량의 관객 수 1위 기록은 9년이 흐른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 등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서비스)에 여전히 올라 있어 전 세계에서 명량을 본 사람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명량(鳴梁)은 물살이 빠르고 소리가 요란한 바닷목(좁은 물길)을 뜻하는 순우리말 울돌목을 한자로 옮긴 지명이다. 명량수로는 화원반도와 진도 군내 사이를 지나는 바닷길이다. 여기서 더 좁은 바닷길이 진도대교 부근의 명량해협이다. 명량해전은 정유재란 당시인 1597년 9월 16일(양력 10월 28일), 13척의 판옥선(板屋船)으로 133척의 왜선을 무찔러 한산도대첩, 노량해전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으로 꼽힌다.

'이순신' 하면 떠오르는 말이 '死則生 生則死'(사즉생 생즉사·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이다. 혼자만의 기록인 '난중일기'에는 결전 하루 전 여러 장수들을 불러 놓고 결의를 다진 약속이 나온다.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兵法云, 必死則生, 必生則死 一夫當逕, 足懼千夫).' 여기에 나온 길목이 바로 울돌목이다. 흔히 이순신의 명언으로 소개되나 일기에 나온 대로 중국 춘추전국시대 병법서(오자병법)를 인용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두 달 후 벌어진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노량해협은 경남 남해-하동 사이에 위치하며 지금의 남해대교 부근)에서 왜군의 총탄에 쓰러진다.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戰方急愼勿言我死·전방급신물언아사)"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징비록'(지은이 유성룡)에 기록되어 있다. 후대에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는 내용으로 와전되어 전해지고 있다. '적'이라는 표현은 상식적으로 알맞지 않다. 전투 중에 일부러 적에게 알린다는 게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한 의미는 '나의 죽음을 (사기가 꺾이기 않도록)아군에 알리지 마라'일 것이다.

호남의 중요성을 일컫을 때 흔히 인용하는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만약 호남이 없다면 국가도 없다)'는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 이순신 장군의 편지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순신 장군은 구국 충절과 곡창지대인 호남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한 것이다.

23전 23승 불패 신화인 이순신 장군이 세상을 떠난 지 426년이 흘렀으나 명량대첩축제로 부활했다. 올해로 15회를 맞는 명량대첩축제가 오늘부터 사흘간 승전지인 해남 우수영관광지와 진도 녹진관광지에서 '불멸의 명량! 호국의 울돌목!' 주제로 열린다. 첫날 저녁 펼쳐지는 미디어 해전과 1000여 대의 공중 드론해전이 '그날'을 시대상황에 맞게 재조명한다.

이순신 장군은 임금에게 버림받고 갖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온몸을 불살랐다. 조선의 그때와 지금의 여러 상황이 겹쳐진다. 이순신 장군이 지금의 친일 망령을 바라보면 뭐라고 꾸짖을까. 울돌목 앞바다를 바라보는 '명량의 고뇌하는 이순신 동상'은 명량대첩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2008년 10월 세워졌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순신 장군의 호국 정신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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