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북일면주민자치회장)

한 예술대 무용과 강의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피아노는 다섯 손가락으로 쳐야 곡이 맞는다. 그것이 예술이다.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아니, 왜요?"

"하여간 아니야. 그건 이상한 피아노야. 예술은 아니야."

"예술이 무엇인데요? 곡이 정상적으로 쳐지고 깊이도 있는데, 왜 꼭 다섯 손가락으로만 쳐야 하나요?"

"피아노곡은 애초부터 다섯 손가락으로만 치도록 만들어져 있어. 무언가 보기가 좀 불편해."

"아니, 불편한 것은 지금 그 말을 듣는 우리가 불편해요. 그럼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는 우리 과에 입학이 불허되나요?"

"그건… 나도 몰라. 나중에 봐야지."

"피겨는 말이야 빙판 위의 발레 스포츠야. 무대 위의 발레는 예술이지만, 피겨는 아니야."

"선생님, 무엇이 스포츠이고 예술인가요? 수중 발레는 스포츠이고, 예술은 아닌가요?"

"그건… 체육대에서나 가르쳐. 그건 예술이 아니야."

스포츠와 예술의 경계는 어디일까. 세상을 정해진 잣대로만 판단하려는 경향은 기득권층에 강하다. 왜냐면 이미 정해진 것 말고 새로운 것이 추가될 경우, 자기들의 기득권에 무언가 손해가 될까 봐서 대부분 꺼리기 때문이다. 신체적 장애를 극복한 피아니스트를 편협한 잣대로 무시하는 일이나, 이것만이 예술이라고 고정 관념에 쌓여 타인의 활동을 폄하하는 일은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타인을 무시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은근한 폭력이나 다름없다.

타인에게 솔직하기가 자신에게 솔직하기보다 더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남들에게 진실할 수 있을까? 내가 남들에게 진실해야 그들도 나를 믿을 수 있듯, 내가 나를 진실하게 대해야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다면 남들도 나를 믿을 수 없다. 그럼에도 아무리 진실되게 살려고 해도 항상 세상은 거꾸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이를 슬기롭게 헤쳐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경우, 자기 탓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 욕하고 싶을 땐 실컷 욕도 하고, 기분을 환기시켜야 견디며 살 수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과거 이명박 시절에 한국을 난도질했던 뉴라이트들이 다시 활개치고 있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 힘을 보탰던 문고리 정치 수법이 부활하고 있다. 이로부터 파생된 피해는 도처에 널려 있다. 이들로부터 받는 언어폭력과 정신분열증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서민들은 좌절을 맞보고 있다. "핵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이다. 일본의 과학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방류를 찬성한 적이 없다. 방류를 반대하는 것은 괴담이다."는 윤석열. 앞뒤가 전혀 안 맞는 말장난이고, 언어폭력이다. 이들의 피아노는 자기들만 알아서 치는 일본 피아노인 모양이다.

전 국민을 무시하고 나만이 옳다고 전횡을 일삼는 윤석열 정부. 잼버리 파행은 전 정부 탓이라면서, 자기들은 폭염과 위생 대책이 전혀 없는 야영을 벗어나 호텔서 자면서 BTS나 보여줄 텐데 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터무니없는 모략을 일삼는 자세. 피아노 칠 자격도 발레 할 자격도 없는 자들이 아니라 예술이나 스포츠가 무엇인지조차도 전혀 모르는 무식한 자들이다.

핵 오염수 방류를 30년 동안이나 계속한다는 데도 극우 일본의 조작된 데이터를 과학이라고, 그것도 일본 사기업의 발표를 믿자는 한심한 자들이 한국을 운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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