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70년대 반공, 승공, 멸공으로 진화하며 점차 강도가 세진 구호가 산야를 뒤덮었다. 바위나 담벼락, 건물 등에 요란하게 나붙은 지금의 북한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일제 강점기의 바통을 이어받은 반공은 이승만 정권을 떠받치는 이념으로 자리 잡았고, 5·16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혁명 공약에서 제1의 국시(國是)로 내걸었다. 국시는 조선시대 유학처럼 국가의 정책이나 이념 정도의 의미이다. 모든 국민은 '반공 국시'의 깃발 아래 60년대 말 반공의 노래, 70년대 초 승공의 노래, 70년대 중반 멸공의 횃불로 이어지는 노래를 좋건 싫건간에 실컷 들어야 했다.

반공은 해방 이후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줄곧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 한 야당 의원은 대정부 질의에서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반공의 국시는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념의 뒤안길을 걷나 싶더니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무대 전면으로 등장했다. 묻고 따지는 걸 극도로 싫어했던 독재 정권에서 '말 많으면 빨갱이'라며 짓이기는 고전극이 등판할 태세이다.

요즘 온 나라를 이념 전쟁으로 몰고 간 중심에 바로 홍범도와 정율성이 있다. 이들의 항일 독립운동은 공산당 이력이 소환되면서 파묻히는 형국이다.

독립군이 가장 큰 승리를 거둔 항일 전투가 1920년에 벌어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이다. 홍범도는 이들 전투의 선봉장이다. 육사에 있는 홍범도 흉상이 철거·이전될 운명에 놓였다. 국방부가 내건 이유는 많은 독립군이 희생된 자유시(스보보드니) 참변 연관 의혹,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 빨치산으로 참가한 의혹 등이다. 역사학계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의혹' 수준을 입맛대로 재단해 독립군의 위상을 헐어내고 '빨갱이'로 덧칠한 것이다. 설령 이런 의혹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도 해도 '주적'이라고 하는 북한이 들어서기 훨씬 이전의 상황이다. 그의 공산당 가입은 기실 독립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봐야 한다.

또 하나 이념의 표적이 된 정율성도 항일 독립운동가이다. 광주시가 올해 연말까지 48억 원을 들여 광주 불로동의 생가에 조성하는 정율성 역사공원이 이념의 덫에 걸려들었다. 국가보훈부가 정율성이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 행진곡과 북한군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사람이라며 역사공원 저지에 나선 것이다. 보훈단체에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마저 가세해 보수언론에 역사공원 건립 반대를 주장하는 광고를 내고 집회도 가졌다. 음악가 정율성은 조선의용군으로 항일 전투에 나섰다. 중국에선 2009년 '신중국 건설 100대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광주시가 역사공원 조성에 나선 것도 중국 관광객 유치의 자원과 한중 교류의 디딤돌로 활용한다는 생각이다.

두 명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매도는 윤석열 정부의 편향적인 이념의 갈라치기가 깊숙이 배어있다. 그렇지 않다면 독립군을 잡는 만주군 장교로 활동하고 남조선로동당에 입당한 박정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친일이어서 괜찮다는 것인가.

역사적인 인물은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지금 정부의 잣대는 공산주의 세력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독립 영웅은 철저히 부정하고 친일이라도 관련이 없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이다. 철 지난 이념에 빠져 퇴행하는 역사가 안타깝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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