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요즘 교육에 대해 말이 참 많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신문 방송에 나와 한마디씩 해댄다. 한 교사의 불행한 죽음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이 분명한 '사회적 타살' 앞에 삼가 고인을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빈다.

이 사태의 촉발은 교사의 인권과 교권과 교육권 문제를 촉발시켰다. 대부분 얘기가 여기에 머문다. 교사도 인간이기에 기본권을 존중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마저 뒷전이었던 이 사회를 생각하라! 교사로서의 권리도 지당하다. 교육할 권리는 교사가 행사할 권리의 바탕이겠다. 그동안 무엇 하나 성찰하지 못한 이 사회는 얼마나 숭악한가?

나는 교사다. 그동안 숱한 민원을 받으면서 교육활동을 해왔다. 교사는 하나의 교육기관이다. 그러므로 교사의 교육관과 교육기관으로서의 교육이념을 교실에서 실현하는 존재다. 이는 헌법과 법률에 기초한다. 그래서 나는 민원이 있을 때마다 전문가들과 교육관료들과의 토론을 요청했다. 아쉽게도 민원인이나 교육관료들이 이에 응한 적은 없다.

학교는 이미 죽었다. 대학이 장사꾼으로 변질되면서 초중고 학교의 사망은 필연적 결과였다. 아이들은 고통스럽고, 교사들도 버티기가 힘겹다. 아이들의 성장은 사라졌고, 아무 쓸 짝에도 없는 지식 암기만 판을 친다. 핸드폰 검색창만 뒤져도 그 천배만배 더 많은 지식을 구할 수 있는 시대에 도대체 뭐하는 짓들인가 싶다. 시험 전에 잊으면 등급이 떨어지지만 시험 직후 잊는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이 요상한 등급 매기기.

그 암기력 하나로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걸 교육이란다. 그리고 소고기 등급 나누듯 9등급이나 심지어는 수천 등급으로 사람을 등급화한다. 이렇게 12년 동안 등급 나누기를 해 두면, 대학은 알아서 골라간다. 이마저도 수도권 대학에게 주어진 특권이지만.

더 웃기는 일은 등급을 부여받은 이 영혼 없는 인간들은 돈을 싸 짊어지고 앞다투어 대학 문으로 뛰어든다. 그렇다고 대학이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을까? 대학을 나와 전공을 살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무튼 이것을 교육이라 칭하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자랑스러운가?

또 늘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교사들은 어떤가? 교육이 무엇인지, 아이들을 위해 교육을 바꿀 의지는 있는지 자신에게 묻고 있는가?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고 있지는 않는지, 등급 잘 매기는 기술을 교육이라 신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성찰해야 한다. 교사들이여, 민원을 두려워해서야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교육관료들이 두려워서야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가? 이제라도 거침없이 나서자!

그런데 이런 상황을 즐기는 세력이 있다면, 교육 문제를 술안주 삼는 사람들이여 계속 안주만 삼을 것인가? 그게 누구냐고? 이 사회를 희망 절벽으로 몰아가는 기득권인 걸 몰라서 하는 소린가? 최저임금이 1만 원도 안 되는 세상에서 50억을 퇴직금으로 받는 청년들이 있고, 수백억짜리 건물을 자랑하는 연예인들이나 강남 2세들이 화면을 장악하는 이 나라에서 지하방 월세를 마련하지 못하는 서민들이 여전히 장밋빛 희망을 노래하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너무 잔인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대안이 뭐냐고? 대안은 이미 차고 넘친다. 그리고 상당 수준의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사회도 많다. 유럽 사회를 보라. 유럽 여러 나라의 교육은 이미 답을 제시하고 있다. 맹목적 추종이라고 억지부리지 말라. 최소한 한국보다는 낫지 않는가? 상황이 다르다고? 그렇다, 다르다. 기득권이 여기처럼 파렴치하지 않다. 두려워 말고 배워서 써먹자. 우리도 사람답게 살아보자. 이게 뭐니,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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