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북일면주민자치회장)

55년 전 겨울, 북한 원산 앞바다에서 미국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pueblo)호가 83명의 해군 승무원들과 함께 북한 해군에 나포되었다. 그해 1월 21일 김신조가 포함된 124군 31명의 무장군들이 청와대를 급습하려는 사건이 있은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미국은 나포된 함정을 구하려고 항공모함 3척과 400대 가까운 전투기를 출격 대기시키면서 잠수함 6척도 동해에 전개하는 등 무력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통하지 않자 베트남전과 동시에 2곳에서 전쟁을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판문점에서 비밀 협상을 통해 영해 침범에 대한 공식 사과와 함께 금전적 보상을 약속하고 사건이 난지 11개월이 지나 82명(1명 피살)을 데려갈 수 있었다. 나포된 푸에블로호는 아직도 평양 대동강변에 전시되고 있다.

푸에블로(pueblo)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마을'이라는 뜻과 '사람'이라는 뜻이 같이 있는데, '마을'은 단순한 지역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의미가 같이 함축된 말이다. "마을이 사람이다"는 말을 우리는 한동안 익숙한 개발정치에 의해서 잊고 살았고, 한강의 기적 속에서 사람의 흔적 찾기가 어려운 숫자 변화에 익숙하여, '사람'의 의미를 아예 무시하고 살았다. 그 '사람'이 나포됐어도 아예 구하려고도 하지 않고 살아온 지난 세월, 우리는 이제야 '사람' 없다고 아우성이다. 한강의 기적이 요란한 한강 변에는 실체가 없는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어 전시되고 있다. 개발이 넘쳐 난 뒤 남은 그 유령선에는 사람이 없다. 그 '마을'에서는 '사람', 특히 젊은이들이 떠나, 도시에 나포되어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고령자들만 남았다.

'사람'이 사라지고 줄고 있는 문제는 이제 20년이 넘은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라지는 마을'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로 만들 것인가가 지대한 과제가 되었다. "시골에 왜 왔어?"하는 질문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사람 대접받고 살려면 시골에 살아야지"라는 말이 당연한 '마을'이 우리가 사는 시골이다.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시골이 아니라, 아주 귀한 곳이 시골이어서, 귀촌(歸村)이 아니라 귀촌(貴村)이라는 시각으로 우리의 마을을 바라보아야 한다. 도시의 아파트 촌에도 마을은 많다. 그러나 '사람'이 매우 드물다. 학력과 재력으로 포장된 이웃 관계가 층간 소음보다도 더 우리를 옥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먼저 귀하게 인식하고 외부의 '사람'들을 맞이해야 한다. 자기 부정이 아닌 자기 긍정 속에서 '사람'들을 오게 하고 사람이 재미있게 살아갈 '마을'을 함께 만들자고 해야 한다. 귀촌정책은 갖은 혜택만으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사람이 살만한 좋은 고장 만드는 모든 정책을 사람 우선으로 추진하고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과 머물고 즐기는 프로그램들을 육성해야 한다.

대도시로 집중된 사람들을 시골에 살도록 유도하고, 군 단위에서도 읍내로 집중되는 사람들을 면단위의 진짜(?) 시골 '마을'에 들어가 살도록 유도해야 한다. 어딘가로 인구가 집중되는 밀집 현상을 줄여야 한다. 그 중심에 나이 들어 은퇴하는 이들이 아닌 젊은이들을 두어야 한다. 귀농자 중심이 아닌, 즉 시골은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기에 다양한 귀촌 정책이 필요하다. 살만한 주거 공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여러 일터를 확보해 줌이 중요하다. 젊은이들을 모으는 데는 그렇게 많은 재정이 필요하지 않다. 사라지는 마을은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마을로 바뀐다. '사람이 재미있게 사는 마을'은 나포될 위험이 전혀 없다. 인구감소를 막을 재주는 없어도, 사람이 살만한 마을을 만드는 재주는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나포된 그 '마을'을 풀어주는 행동을 '사람'이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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