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최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었다. 여전히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는 우생학을 다룬 책으로 강자의 의식,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룰루 밀러라는 작가의 섬세한 일상과 집요한 관찰과 뒤따르는 분석이 돋보인다. 작가가 영웅으로 삼는 한 인간을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놀라움과 깨달음,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는 이 글은 역사 속에서 '미소 짓는 악마'를 찾아낸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별에 머리를 담근 소년이 열정적 탐구와 성장을 통해 분류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누구라도 매료될 만큼 따르고 싶게 한다. 그가 선지자를 만나고, 물고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열정과 폭력, 파괴의 간극에서 오는 께름칙함은 이 글의 반전을 내재하고 있다. 거기에 '긍정적 착각'이 가져다주는 거침없는 질주는 자꾸만 물음표를 던진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옳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이라는 낙천성의 방패를 장착하고, '자기 우월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믿음 때문에 자신은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을 저질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조던이라는 인물이 골턴(다윈의 사촌)의 우생학에 심취하는 과정은 진화과정에서 돌연변이로 출현하는 악마와 일치함을 보여준다.

생각해 보면, 다윈은 환경에 따른 다양한 진화를 존중해야 함을 강조했는데도 그의 사촌은 그 다양성을 혐오하고 우월한 종족을 위해 그 외의 종족을 제거하려는 악마의 달변을 쏟아낸다. 급기야 세상은 그 달변에 현혹되어 사회 약자이거나 우월종의 위험 대상에게는 제거나 멸종을 명령할 수 있다는 우생학에 병든다. 여기엔 자못 과학적 통계치가 기초를 제공하는데 아프리카나 아시아 사람들을 영어로 된 IQ 검사지로 측정하여 비영어권 인종을 열등한 인종이라 낙인찍은 후 제거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은 상상 이상의 효과를 내는데, 식민지 쟁탈과 세계대전의 합리적 근거가 된다. 히틀러나 일본 군국주의만의 문제일까? 우생학은 영국에서 발원하여 미국과 유럽을 휩쓸고, 급기야는 세계 전역을 휩쓰는 페스트보다 강력한 바이러스가 된다. 소수자 소탕령이 내려진 것이다. 그것도 매우 합법적으로. 각 나라마다 앞다투어 우생학에 기초한 법률안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여기서 파생된 사회진화론은 그 의도를 비웃듯 사회분석과 약육강식, 승자독식, 약자의 자기혐오를 심는 데 혈안이 된다. 그리고 사회근대화론으로 파생되고 식민지근대화론을 낳게 된다.

이것은 다윈의 상호 불간섭 원칙을 철저히 외면한 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나 집단을 말살하는 기술'로 작동하고 있으며, 1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작금의 한국을 보자. 기득권층이 주창하는 논리가 무엇인가? 우생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더 무서운 것은 학교 교육은 이 논리를 퍼트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사교육이나 정치논리는 이를 강화하기 위해 총력전이다. 한국의 법률엔 우생학이라는 단어가 요리조리 헤엄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인의 속을 점령한 연고주의로 그 위세가 당당하다. 학연, 혈연, 지연뿐이겠는가? 이제는 인터넷망으로 연결되어 가히 인드라망을 형성하고 있다. 이 촘촘한 그물은 치어들마저 살아남기 어려운 형국이다. 한국인들의 자조 섞인 '이번 생은 망했어'는 웃자는 소리가 아니다. 나는 두렵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것은 우리 공동의 책임이다. 행동하지 않으면서 조롱하려 든다면 그대도 우생학 환자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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