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보는 감이라 몰래 만져보고 따먹어보고

◇ 장성리는 일제시대때 보급된 장두감으로 가을이 되면 온 동네가 붉은색으로 물든다.

'장두감' 일제때 장성리서 첫선 당시 해남명물

집집마다 서너그루 온동네가 붉은색

감도 나무모양도 예뻐 정원수로 이용

 

  “마산 장성리 마을에 이상한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 온 동네가 빨간 색이 될만큼 집집마다 감들이 달려 있는데 그 크기가 엄청난데다 맛도 그만이여”
  일제시대 때 마산면 장성마을(이장 이상근) 농가 뜰 감나무에 흔히 보아왔던 감들이 아닌 커다란 장두감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보는 감인데다 홍시되어 먹어본 감 맛이 꿀맛이라 이 마을 감은 삽시간에 해남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을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무슨 신기한 보물을 대하듯 이리저리 살펴보고 손으로도 만져보고, 간혹 간 큰 이들은 홍시 된 감을 살짝 따서 먹어보니 맛도 그만이더란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장성리 감나무는 해남의 볼거리가 되었고 이곳 감을 먹어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도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데다 이곳 감나무의 특징은 키가 작고 옆으로만 퍼져 있어 살짝 하나 따먹기에 그만이었다고.
 ◇ 정원수로 이용되고 있는 장두감나무. (장성리 김성채씨 댁) 현재 장성마을을 붉게 물들인 감나무들은 일제시대 때 그 생명력을  부여받은 것들이다.
 당시 이 마을에서 양잠농장을 운영하던 일본인들에 의해 장두감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인들의 마을이라고 불렸을 만큼 당시 장성리에는 일본인 12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이 운영하던 양잠업으로 장성리는 온통 뽕나무밭이었고 일본 감나무로 일컬어졌던 장두감도 이들에 의해 소개됐다.
 처음 맛보는 장두감, 그러나 농장 안에 있었던 감나무는 일본인들의 감시가 워낙 심한데다 한번 붙잡히면 경찰서까지 갈 각오를 해야하기에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일본인 농장에서 일을 하며 접기술을 배운 민성복씨(작고)에 의해 동네에 장두감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처음 접하는 신기한 감인데다 크기도 엄청나고 맛도 꿀맛이라 동네사람 너도나도 민성복씨 발목을 붙들었고 그의 기술 덕택에 이 동네는 온통 장두감 천지가 돼 버렸다.
  장성마을 장두감 홍시는 해방전후 해남장날과 황산 남리장의 명물이었다. 집집마다 장두감나무가 서너 그루씩 있는데다 감이 워낙 많이 열리기에 집안에서 다 소화시키지 못하고 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한 것이다.
◇ 집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감나무 터널이다. (장성리 민병주씨 댁)  특히 황산 사람들은 장성리 홍시하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했다고 하는데 60년대 황산면사무소에서 근무했던 민병준씨(72)에 의하면 장성리 홍시 사 먹으로 남리장 간다는 말이 당시 황산에서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민병준씨에 의하면 장성리 장두감 맛은 동네에 있던 감나무와 접을 붙였을 때만이 그 맛이 나온다고 한다.  
  한 개 먹으면 배가 부를 정도인 장성리 장두감, 가을이 무르익은 현재 장성리 마을은 온통 붉은 색이다.
 집집마다 서너 그루씩 있는 장두감, 감도 이쁘지만 나무의 수형도 예뻐 훌륭한 정원수 역할도 하고 있다. 
  민성복씨에 의해 장성리 마을에 보급된 장두감은 해방이후 해남읍과 삼산면 등 인근 지역으로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감나무 접목기술자로 널리 알려진 민성복씨에 의해 장두감이 인근 읍·면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감나무  접목을 요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한  때 민성복씨는 눈코뜰새 없는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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