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잠잘 때까지 전쟁을 합니다
¨엄마 호랑이 이야기 해줘.¨

인이는 졸라대고 그새 환이는 껌껌한 속에도 옷장 문 열어놓고 옷을 죄다 꺼내며 노느라 바쁘지요. 제 얘기는 언제나 ¨옛날에....¨로 시작해 ¨행복하게 살았대요¨로 해피엔딩 조입니다. 이 얘기 저 얘기 꿰맞춰 이야기 하다보면 입이 다 아플 지경입니다. 그럴 때면 슬그머니 자장가 불러준다고 분위기 바꿔 보는 수 밖에 없지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이 노래로 자장가를 시작하면 인이 녀석 꽥꽥 소리 질러대며 중창을 하지요. 도통 자장가가 뭔지 모르는 녀석입니다. 그리곤 다음 노래가 무엇일지 빤히 알고는 ¨어젯밤 꿈 속에 ...¨ 하며 앞장 서 노래 부릅니다. ¨엄마, 엄마. 내가, 인아가 혼자~아.¨엄마를 두 번 부른 건 부르지 말라는 강한 뜻이 담겨 있는 거고, 저를 두 번 강조한 건 꼭 저 혼자 부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때쯤 환이는 어느새 제 배 위에 엎드려 새근새근 잠들어 있기 마련이지요. 오늘은 인이 녀석 제 아빠 한테 이야기 해달라고 조릅니다. ¨아빠 바구니 얘기 해줘¨ 뜬금없이 바구니 이야기를 해달라니 궁색해진 제 아빠 이렇게 눙칩니다. ¨옛날에 바구니가 살았어요. 바구니는 깜깜한 밤이 되면 코 잔대요. 그리고는 행복하게 살았대요.¨ 이에 뒤질세라 우리 인이 ¨호랑이 얘기 해줘.¨ ¨원숭이 얘기 해줘¨ 하더니 토끼, 다람쥐, 생쥐 줄줄이 이름 대며 이야기 해주랍니다. 그때 마다 제 아빠 ¨옛날에... 행복하게 살았대요.¨이름만 바꿔가며 능청스럽게 이야기 늘어놓습니다. 그러니 우리 인이 제 아빠가 ¨옛날에 ¨ 하고 꺼내면 ¨코 잤대요?¨ 하며 아는 척을 해댑니다. 이야기가 재미 있고 없고는 뒷전입니다. 제 아빠의 이야기에 저도 끼어 줄거리를 엮어간다는 사실이 그저 즐거운 모양입니다. 그러다 몇 번이고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니 이번엔 제 녀석이 ¨아빠 코 자자.¨ 하고 눙칩니다. 녀석도 벌써 눈치 챘던 겁니다. 아빠 이야기는 오래 전에 재미 없어졌다는 것을요. 녀석 하는 냥이 하도 우스워 제 아빠도 저도 뒤집어졌습니다. 한 번 터진 웃음은 쉬 멈추지 않아 깔깔대며 눈물이 날 때까지 웃었습니다. 우리가 왜 웃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이 더 신이 나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어대고 야단입니다. 어느 시절 내 이리 배꼽 잡고 깔깔대며 웃었는지 기억도 없는데 우리 예쁜 딸 인이가 저더러 행복하게 마음껏 웃으라 합니다. 녀석이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워 이내 잠든 녀석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이런 날은 ``이게 행복이라는 거구나.`` 생각하며 괜히 인이 아빠한테도 ¨자기야 잘 자. 사랑해.¨ 하며 말 인심을 씁니다. 인이가 환이가 이렇게 나를 살게 합니다. 인이 아빠가 가게를 시작하기 전 썼던 일기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루 중에서 인이 아빠, 인이, 저, 환이 이렇게 넷이서 나란히 누워 잠자기 전 벌이던 ``전쟁``이 가장 즐거운 일과였던 것 같습니다. 24시간 독차지 하고도 모자라 시나브로 엄마 아빠 품을 파고드는 두 녀석인데 요샌 아침에 잠깐 아빠 얼굴 봅니다. 조금만 더 크면 엄마 아빠 보다 또래 동무들이 더 좋아지는 나이가 될텐데 감질 맛 나게 아빠를 만나는 두 녀석이 안쓰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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