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해남! 향우마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고향을 향한 그리움, 사랑, 추억 등이 천차만별일 것이며, 고향을 찾는 감회 또한 각기 다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고향을 만날 때마다 마치 과거를 비쳐보는 커다란 거울 앞에 서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쉬지 않고 흐르는 세월 속에서 사람은 가고 뒤바뀌는 운명 속에서 인심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향을 찾을 때마다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고향이란 대체로 태어났거나, 자랐거나, 혹은 다시 돌아가야 할 사연이 있기 때문에 고향이라고 부른다. 아니 이 세가지 중에서 하나쯤은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울 향우들께서는 이들 모두가 다 연결되고 포함되어 어쩌면 고향과 서울이 공존하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현재 50∼60대 이상의 대부분의 서울 향우들께서는 산업화에 발맞추어 빈손으로 고향을 떠나 역경과 고난을 물리치고 성공하신 훌륭하고 장한 향우님들이시다. 그러나 한때는 지방 차별화의 텃세 때문에 고향을 못 본 체 하기도 했고, 부인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호적을 서울로 옮겨 가짜 고향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이 적어도 내게는 부질없고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고향 해남은 언제나 나의 자존심이요, 자랑이 되었다. 고향은 내 젊은 날의 초상일 뿐 아니라 첫사랑을 입맞춤했던 향기가 있고, 부모님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들어 계시고 나 또한 그곳에 묻혀야 할 땅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구촌이니, 글로벌이니 하면서 고향을 뒤돌아보는 삶을 퇴영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고향을 잊고 살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눈감으면, 살아나는 고향땅이요, 지치고 힘들 때면 생각나는 그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또 고향에서는 김아무개 아들이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히 통했고 평가받지만, 고향을 떠났을 때는 입고 있는 양복 안쪽의 브랜드가, 사람 위에 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하여 고향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나는 황산면 향우회장으로서 고향 해남의 기쁨과 행복뿐만 아니라 슬픔까지도 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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