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진(해남군농민회장)

 
 

코로나19 등 전염병 확산과 기후위기, 전쟁 그리고 WTO 경제 질서의 해체 과정은 세계로 하여금 식량 자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리고 자국의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기후위기와 코로나19로 인한 농가 손실을 보상하고 식량 생산과 에너지 생산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 농가 부채탕감을 시작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다.

한국과 농업구조가 비슷하고 식량자급률(칼로리 기준)이 38%에 불과한 일본은 지난 1월 밀 콩, 옥수수와 같은 농작물의 경작지를 확대하고 자국 내 비료 생산을 늘리는 '식량안보 강화 정책'을 발표했다. 일본의 이러한 정책 전환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제 곡물 가격과 비료 가격이 급상승하여 불안정한 식량 공급 상황을 겪은 뒤 식량의 과도한 해외 의존이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 식량 정책은 어떤가? 2022년 식량자급률은 19.8%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리둥절하게도 코로나19, 기후위기, 전쟁으로 세계적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농산물로 둔갑시켜 가격 폭락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적 흐름과 너무도 다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통계작성 이후 최대폭으로 쌀값이 하락했고 쌀값 안정을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 주장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폭락한 배추가격을 더 떨어뜨리겠다고 설 명절 땐 평시보다 1.5배를 더 시장에 방출하였다. 한우값은 폭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소비자 가격은 그대로라고 수입을 늘릴 계획이고 인건비도 안 나오는 겨울채소 가격은 안중에도 없이 할당관세를 더 늘려 무분별한 농산물 수입을 계획하고 있다. 2022년 양파의 경우 국내 수입 물량이 전년보다 66%나 급증했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양파 수입 관세를 135%에서 무관세에 가까운 10%로 낮췄기 때문이다. 2018년 66개 품목이었던 할당관세(0%) 적용은 22년 83개 품목으로 늘었고 올해는 101개가 운용된다.

한국 사회는 공산품을 많이 팔아서 번 돈으로 식량을 사다 먹으면 된다는 WTO 신자유주의 논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용인해주고 있는 사회이다. 하지만 세상은 급속히 변하고 있다. 세계는 코로나19로 국경이 폐쇄되고 기후위기로 생산량이 급감해 돈이 있어도 식량을 수입하지 못한 상황을 미리 경험했다.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국, 일본을 비롯 다른 나라들과 한국의 대응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은 식량 수입 다변화와 안정화를 꾀한다는 것이 중심이라면 미국은 농업의 지속가능성 확대, 일본은 식량자립에 방점을 찍고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정부가 물가안정 정책으로 농산물 수입을 우선시하며 농민들의 삶은 근래 들어 가장 어려워졌다.

세계적 인플레이션은 기준금리를 폭등시켜 현재 농업금융금리는 많게는 3배 이상 올라있다. 여기에 농산물 가격은 폭락하고 농자재 가격, 유류대, 전기료, 인건비.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2~3배 이상 폭등하여 농업 생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해남 농민은 배추가격 폭락으로 더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또한 식량과 농산물을 바라보는 소비자인 국민의 시선도 변해야 한다. 농산물이 물가 상승을 주도하려면, 물가지수에서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야 하지만 농산물 가중치는 2017년 65.4로 급감했다. 공업제품의 가중치는 333.1이고 집세나 공공서비스, 외식 등 서비스의 가중치는 551.5이다. 농업생산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식량안보와 주권을 지키는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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