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수(광주대 부동산학과 교수)

 
 

유교적 전통이나 사회적 관계, 매스컴을 통해서 결혼생활에 대한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본인이 처한 결혼생활 상황과 고정관념 사이에 차이가 커질수록 부부간 갈등은 심해지고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진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을 기대하던 결혼생활은 환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된다.

'결혼지옥'. 상담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오은영 박사가 주도하는 MBC TV의 예능 부부상담 프로그램이다. 청춘남녀는 서로 만나 연애하고 사랑해서 행복한 꿈을 꾸며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꿀처럼 달콤하고 핑크빛으로 물들었던 신혼초의 로맨스 생활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화병 속의 꽃처럼 점점 시들어 메말라가고 지나간 신문처럼 누렇게 빛이 바래간다.

이제 결혼생활이 육아, 돈, 성격 차이, 고부갈등, 섹스리스, 대화 단절, 신혼과 황혼 갈등 등으로 남남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부부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방영할 때마다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다.

"저렇게 지옥에서처럼 살면 서로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존재일까? 그런데 결혼은 왜 한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포기하는 청년들이 급속히 늘어가고, 세계 많은 국가들이 우려할 정도로 출산율은 기록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청년들의 부정적인 결혼관을 더욱 악화시킬 것은 명약관화하다.

결혼에 대한 또 하나의 '웃픈'(웃기다+슬프다) 장면을 보자. 한참 전 TV의 내 고향 관련 프로그램에서 리포터가 할머니에게 질문하면 답을 맞추도록 되어 있었다. 리포터 : "할아버지와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어떠셨어요?" 할머니 : "웬~쑤!", 리포터 : "아니요, 할머니, 네 자예요." 할머니 : "평생웬~쑤!" 정답은 천생연분이었다. 모두가 파안대소했지만 뒷 맛이 영 씁쓸했다.

나 역시 저 할아버지와 할머니 같은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보면서 배웠고 그것이 옳은 줄 알고 배우자에게 행동하였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다정하게 말을 건네면 팔불출이 되는 것으로 여기셨으며, 아무리 배가 고파도 부엌에는 들어가신 적이 없다. 또 남자는 과묵해야 권위가 있으며, 내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나의 마음을 헤아려서 척척 해주는 아내를 기대하였다. 또 선배가 우리 후배들과 술자리 한 후에 저녁 늦게 집으로 데리고 가도 싫은 내색 없이 반갑게 맞아주는 형수님을 보면서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배려가 멋지게만 보였다.

이렇듯 나는 아버지로부터 결혼생활과 자녀 양육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정말 닮고 싶지않은 아버지의 모습이 나를 통해 자녀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것 때문에 아내와 싸우기도 많이 했다. 나는 아버지의 의무로 자녀의 교육이나 의식주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을 살펴주고, 앞날을 위해 준비해주고, 자녀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 부부 사이가 좀 나쁘더라도 아버지로서 사랑을 충분히 주면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녀와 속마음까지 열린 사랑의 관계가 맺어지려면 이러한 대물림의 끈을 끊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과의 관계 및 양육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상담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자녀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따로따로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부모들의 금슬 좋은 부부 사랑 속에서 자녀들이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새 생명을 주는 진정한 의미이다.

결국 부모의 사랑보다 부부 사랑이 자녀에게는 더 소중한 생명수임을 꼭 기억하자. '결혼지옥'에서 나오는 부부들처럼 결혼에 대한 지식, 즉 남편·아내·부모의 역할, 육아, 가사일 등에 대해 무지와 편견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더 불행해지기 전에 친밀한 부부가 되기 위한 결혼학교가 해남에서 하루라도 빨리 개교하기를 제안한다.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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