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인기(본사 대표이사)

 
 

지난 4일 해남읍 고도리에서 해남군 농민회와 전국쌀생산자협회 해남군지부가 주최한 해남농민대회가 열렸다. '밥 한 공기 300원 보장하라' '영농비 폭등대책 마련하라'는 깃발을 내건 500여 대의 차량이 2차선 도로 수백 미터를 점령했다. 농사철 바쁜 일손을 멈추고 참석한 농민들의 주장은 절박하면서도 처절했다.

커피 한 잔, 담배 한 갑 가격은 잘 알면서도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100g 쌀값이 220원인지는 모른다며 농민들의 오랜 염원인 300원은 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올 1/4분기 발표에 의하면 농가의 재료비 구매비용은 작년보다 32.3% 상승했다. 비료·농약·영농자재비·인건비 등 영농비가 폭등하고 있는데 일반 산지 쌀값(20kg·통계청 조사)은 4만원 정도로 45년 만에 최대로 폭락한 실정이라며 영농비 폭등대책을 마련하라고 울부짖는다.

수확을 앞둔 벼를 갈아엎는 등 전국적으로 농민들이 수확기 쌀값 폭락에 대한 움직임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지난달 25일 신·구곡 합산 45만 톤을 시장격리하겠다는 쌀 수급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쌀 작황조사와 신곡에 대한 수요량을 검토한 결과 올해 약 25만 톤의 초과 생산량과 작년도 쌀 10만 톤을 합해 45만 톤을 시장격리한다는 내용이다.

현행 양곡관리법상의 시장격리는 초과 생산량이 3%이상, 쌀가격이 5%이상 떨어지면 할 수 있는 임의조항이어서 초과 생산된 쌀의 시장격리 의무화를 주내용으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놓고 국회에서 여야가 대립하면서 쌀의 시장격리 의무화의 앞길도 순탄치 않다.

이러한 정부 대책에 대해 농민단체들은 시장격리만으로는 쌀값 보장이 안 된다며 근본적인 쌀값 보장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쌀값 폭락은 농업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의 결과라는 역사적 진실은 살피지 않더라도 그동안의 추곡수매 폐지, 목표가격 폐지. 자동시장격리 외면, 대책 없는 쌀 수입 개방 등이 초래한 사실은 분명하다.

농업정책의 부재 및 실패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농업·농민·농촌을 바로 보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분별한 경제성장과 개발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을 둘러싼 국제정세에서 보듯 국제 곡물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쌀의 생산기반을 지키는 것은 전 국민의 생존문제이며 국가안보문제다. 제2의 주곡인 밀의 자급률이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식량을 책임질 최후의 수단은 '쌀'일 수밖에 없다.

농민들도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를 가진 대한민국의 주권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된 생산물의 가격은 그 생산물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생산비에 적정한 이윤을 더하여 결정하게 된다. 현재 삶의 필수재인 쌀 가격은 생산비나 이윤은커녕 그 판매가격 결정도 생산자인 농민의 손을 떠나있다.

국가의 농업·농촌·농업에 대한 정책이 기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 성장과 개발을 중심으로 한 각자도생의 물질주의 문명에서 생태와 상생으로의 문명 전환을 시작하는 의미에서 농업·농민·농촌을 제자리에 세우는 첫걸음으로 생산비를 보장하는 쌀값 공정가격제를 실시해야 한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인 우리 해남에서 쌀값 보장은 농민만이 아닌 해남공동체를 살리는 희망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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