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섭(해남군농민회 정책실장)

 
 

중국 전역에서 폭염과 가뭄, 폭우 등 이상기후 현상으로 식수 공급이 중단되고 일부 지역에서는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지난 4월 121년 만에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하늘을 나는 새들이 탈수 현상으로 추락하는 일까지 있었다. 지난 5월 미국에서는 한쪽은 폭염으로, 다른 한쪽은 50㎝에 달하는 폭설이 내렸다. 기후학자들은 2040년에는 평균 기온이 1.5℃ 높아지면서 폭염은 8.6배 증가하고, 집중호우는 1.5배, 가뭄은 2배나 증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농산물 생산의 어려움, 코로나 19 팬데믹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국가 간 갈등과 이해관계 등 세계무역질서에 대한 불확실성은 지구촌의 식량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식량위기가 고조되면서 주요 농산물 수출국들이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식량자급 기반은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지는 1976년 220만ha에 달했으나 2020년 기준 30%가량 감소한 156만ha에 그친다. 더 큰 문제는 기후 위기와 전쟁으로 수입을 통한 식량수급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1년에 전체 농지의 1%씩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80%에 달하던 곡물자급률이 2020년 19%대로 떨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우리나라는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UR협정)을 시작으로 WTO, FTA, 현재는 CPTPP까지 참여를 준비하며 식량 수입 비중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식량 위기 극복 방법으로 식량 공급처의 다변화 전략을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식량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 생산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인구에 비해 땅이 작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은 정해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방식의 '식량안보'는 농산물 수출국에서 만들어낸 개념이다.

결국 수출국의 말을 믿고, '언제나, 어디서나 싼값으로' 식량을 수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국의 식량 자급기반을 없애버린 대표적인 국가인 필리핀이나 아이티 같은 나라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3모작이 가능했던 필리핀은 세계 최대 쌀 수출국에서 수입국이 되어 있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쌀 자급률이 100%였던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 아이티는 쌀을 포기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무장한 군인들이 쌀가게를 지키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 서민과 가난한 자들의 삶은 죽음보다 비참하다.

곡물자급률 19%대, 이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로 인해 곡물의 수확량이 감소하고, 투기자본의 침투 등으로 곡물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식인 쌀값은 폭락하고 쌀농업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21년산 벼를 가지고 있던 농가가 조곡 40kg 한 가마에 4만4000원에 팔았다고 한다. 쌀값이 그칠 줄 모르고 폭락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수확기에 조곡 40kg 한 가마에 3만원대까지 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인한 영농자재비 폭등에 인건비의 가파른 상승, 유류값, 비료값 폭등으로 농산물 생산비는 치솟고 농가경제는 파탄지경인데, 정부는 때늦은 최저가 입찰방식의 시장격리와 수입쌀 방출로 가뜩이나 어려운 농민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농사지어 생산비도 건지지 못한다면 누가 농사를 짓겠는가?

민생안정을 말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농민은 국민이 아닌가? 벼랑 끝의 농민들에게 남은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과 대책없는 정부를 향해 저항하는 일만 남아 있다. 지금의 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고미를 시장에서 전량 격리하고, 22년산 쌀생산량 예측을 통해 초과량에 대한 선제적 시장격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8월 29일 전국의 농민들이 서울로 모인다. 쌀값 대폭락은 정부가 주범이다.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농사일을 일시 중단하고 농기계를 앞세우고 서울로, 대통령 집무실로 나아가야 한다. 농업에 관심없는 대통령이 관심을 갖게 하고,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농업장관을 겸직해서라도 농업문제를 해결하고 식량안보와 주권을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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