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호(삼산면 주민자치회장)

 
 

좀 엉뚱한 비유일까.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무릎과 무릎 사이'라는 조금은 야릇한(?) 멜로영화가 히트를 친 적이 있다. 집 나간 남편에 대한 경멸과 증오심을 성년의 딸을 향한 지나친 통제와 간섭으로 해소하려 하지만 자연스런 인간의 성장본능을 인위적으로 제어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담았던 것 같다.

무릇 '관계'로 이어지는 사이와 사이는 그만큼 진실되고 평등할 때 성숙되어지는 것일 게다.

요즘 시대의 소명이랄까. 주민자치운동이 활발하다. 우리 군도 8개 면의 주민자치회가 출범하는 등 외형으로는 활발한 자치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북일면 자치회처럼 잘된 사례도 회자되고 있다.

주민자치란 마을(지역)의 여러 문제를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행정과 의회가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관건은 행정과의 사이, 즉 관계이다.사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일에서 집행부인 행정(관)이 정한 데로 따라만 해 왔고 어느새 그 패턴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 상태에서 행정이 먼저 나서 주민자치운동을 권면하고 있지만,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은 주민들의 의식과 참여 문제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권리의 주체이면서도 맡겨놓은 집행부(행정)에서 정해준 대로 따라만 해 오다가 '자주 모여라'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라'고 하자 조금은 버겁고 부담스러워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실제로 자치회 일은 그 양과 깊이에서 많은 시간과 상당한 수준이 요구되는데, 무작정 희생과 봉사만을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치회가 직접 일을 할 수 있도록 과감한 예산배분이 필요하고 그 패턴도 확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색이 자치회 특수사업비라면서 읍면장 300만원이 말이 되는가. 군에서는 참여예산이나 공모사업쪽을 말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여러 제한과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는 기본적으로 주민세 재원을 자치회에 되돌려 주어야 하고 차제에 주민숙업사업 지원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주민자치회에서도 문화예술이나 생산, 유통 같은 소득사업을 할 수 있도록 과감한 정책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직사회의 의식과 행태이다. 주민자치회야말로 정부가 정의한 대로 엄연한 주민들의 대표 조직임에도 그 위상과 존재에 대한 개념 없이 그냥 여러 사회단체의 하나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겉으로는 거버넌스, 협치. 소통이니 말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군정의 동반자나 지원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자치행정의 지도. 관리 대상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이렇듯 주민자치운동에 대한 인식이나 관점의 차이가 오래 가고, 참여율 제고를 위한 당근책 같은 특단의 조치도 없다면 이 운동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고정관념을 버리면 된다. 그냥 군정의 동반자로 함께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주민자치조직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운영체계(사무국 운영 등)를 갖출 수 있도록 해주고, 회의참석 수당도 지급해야 하며 군과 의회의 각종 위원회 등에 참여시키는 등 실질적인 동참의 길을 내주어야 한다.

아무튼 지금 해남의 주민자치는 자치와 관치 사이에 머무르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해결책으로는 온전한 민·관 협치만이 답이라고 주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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