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혁승(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위기론이 부상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국가로 인정받던 미국에서 트럼프라는 선동가가 나타나 대통령이 되고, 재임에 실패하자 지지자들을 충동질하여 대의민주주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의사당까지 점령한 사태는 미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견고하게만 보였던 미국의 민주주의 토대에 상당한 균열이 진행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도 대립과 분열이 심각한 수준이다.

대립과 분열 현상은 소셜 미디어가 보편화되면서 그 정도가 심화되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와 같은 소셜 미디어는 물리적 제약 없이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장을 열었다. 온라인상에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구관계를 맺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에 들어가면 그들의 사고가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데 있다. 그들끼리 공유하는 비슷비슷한 정보가 서로의 생각과 확신을 강화해주기 때문에 '확증 편향'이 심해진다. 또한 집단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보나 의견을 개진해야 집단 내에서 자신의 입지와 평판이 높아지기 때문에 집단 구성원들이 동의할 것 같지 않는 내용은, 비록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집단 안에서 공유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이 강화될수록 그들끼리의 상호작용이 메아리 효과를 통해 극단화로 흐르게 되는데, 이를 '집단 극단화' 현상이라 한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들이 지지층 결집을 강화하기 위해 이에 편승하거나 이용함으로써 사회적 분열을 부추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과 작금 국제질서의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통합과 협치는 윤석열 정부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통합과 협치가 말하기는 쉬우나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 첫걸음은 정부 요직을 맡길 인물들을 선임하는 데서 시작되는 바, 새 정부가 통합과 협치를 지향한다면 적어도 아래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윤석열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보였던 전투 모드를 확실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고 통일제국을 이뤘던 진나라가 짧은 수명을 다하고 무너진 후 다시 중국을 통일했던 한나라 고조 유방에게 육가(陸賈)는 "천하를 말 위에서 잡았다고 해서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렇다. 진정 당선자가 진영의 대통령이 아니라 전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면, 대선 기간 진영간 승패를 가르는 치열한 선거전의 전면에 서서 국민 갈라치기를 불사하며 정치선동에 앞장섰던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워서는 안 된다. 국민과 대의를 위해 선의의 토사구팽을 단행해야 한다.

둘째, 상대 정치세력에게 위협의 상징이 될 만한 인물도 배제해야 한다. 정치적 분열이 사람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결과를 보면, 한쪽 정치 세력에 속한 사람들은 상대편 정치 세력에 속한 사람들이 실제보다 두 배 정도 더 극단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상대편 사람들을 훨씬 더 차갑게 대하고, 두려워하며, 경멸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상대 진영에게 위협감을 주는 인물을 앞세울 경우 상대 진영은 통합과 협치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경계 태세를 더욱 더 강화하게 된다.

끝으로, 진영을 넘어 큰 그릇의 인물을 찾아 국정을 맡겨야 한다. 춘추시대의 질서와 규범을 세우고 제나라 환공을 첫 번째 패왕으로 만들었던 관중은 환공의 형 규를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환공을 죽이려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환공은 왕이 된 후 "주군께서 장차 제나라만을 다스리고자 하면 고해와 저 포숙이면 충분할 것입니다만, 주군께서 패왕이 되려고 하신다면 장차 관중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라는 측근 포숙의 추천을 받아들여 관중을 재상으로 임명한다. 통합과 협치가 진영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이익을 위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대정신과 국정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진 인물을 찾아 국정을 맡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상의 기준에 비춰볼 때, 당선자의 첫 총리와 장관 후보자 인선은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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