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희 씨가 초등 4학년인 셋째 딸 현서와 책을 마주하고 있다.
▲ 최승희 씨가 초등 4학년인 셋째 딸 현서와 책을 마주하고 있다.
 
 

"집밖에 빨래를 처음으로 널었어요"

- 자녀가 학교생활 잘 적응해 무엇보다 만족
주민들도 "애들 소리에 마을도 생기" 반색

북일 방산마을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30가구에 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폐가로 방치된 빈집이 40%에 가깝고 애들 소리가 언제부터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까마득하다. 이 마을에 다시 생기가 돌고 있다. 작은 학교 살리기 캠페인이 몰고 온 새 바람이다. 5가구가 이사해 오면서 주민도 21명이 늘었다. 유치원생과 초·중학생 11명은 매일 아침이면 셔틀버스를 타고 등교한다.

경기도 용인의 도시 생활을 접고 지난달 25일 딸 셋과 함께 이 마을로 이사 온 최승희(42) 씨. 직장 일 때문에 아직 오지 못한 남편(강민수·42)도 가족과 함께 살아갈 날을 기다린다. 서울이 고향인 최 씨는 줄곧 수도권에서 살아오다 처음으로 시골, 그것도 연고가 전혀 없는 해남 북일의 한적한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빨래를 집밖에 처음으로 널었어요. 문만 열면 바람 불고 쏟아지는 햇볕을 맞는 게 너무 좋고, 처음으로 텃밭에 고구마와 당근도 심을 거예요."

최 씨가 어렴풋이나마 시골 꿈을 갖게 된 것은 도시 생활에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한 때문이다. 초·중학교에 다니는 세 딸 모두가 등교한 날이 코로나19 여파로 2년간 고작 10일도 채 되지 않았다. 딸 돌보느라 자신의 시간을 갖기도 힘들고, 집안에만 틀어박힌 삶이 마치 무인도에서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11월 '학생 모심'이라는 신문 기사를 우연히 접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북일면사무소에 전입 방법을 알아본 뒤 3개월 만에 북일 주민이 됐다.

20여 일의 시골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운전을 하지 않아 편의점을 가려면 버스를 타거나 1시간을 걸어가야 한다. 이를 빼면 불편한 게 사실상 없다. 집이 오지에 있는 것도 아니다.

최 씨가 가장 만족하는 것은 자녀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강현진)는 두륜중 3학년, 둘째(다현)와 셋째(현서)는 북일초 6학년과 4학년이다.

"첫째 딸은 전교생이 함께하는 단톡방이 신기하다고 해요. 가족같은 분위기에다 학생 수가 적어 수업시간에 선생님 눈을 피해 딴짓을 할 수도 없어 공부에만 집중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지난 14일부터 시작된 방과후 수업도 무료인데다 요일별로 다른 내용으로 꾸며진다. 부모가 자녀의 체험학습에 나설 이유도 없어 말 그대로 '원스톱 교육'이다.

최 씨는 살림하는 집에 더해 그동안 부녀회관으로 사용되던 건물도 얻었다. 원래 입주 예정자에게 주택으로 제공하려고 했으나 원하는 사람이 없어 주민들의 동의를 거쳐 1000만원의 사비를 들여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위한 공공시설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이사올 때 2000개 정도의 보드게임도 이곳으로 옮겼다. 보드게임은 장기, 바둑, 체스 등 두 사람 이상이 즐기는 놀이다. 특별한 놀이문화가 없는 시골에서 아이나 어른들이 즐기도록 할 예정이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마을 어른들을 초청해 신고식도 할 생각이다.

최 씨는 "마을 어르신을 길에서 만나면 젊은 사람이 오고 애들 소리도 나서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고 말했다.

주정민(66) 방산마을 이장은 "그동안 동네가 텅 빈 느낌이 들었는데 한꺼번에 20명이 넘는 젊은 사람들이 입주하면서 애들 소리도 들리며 마을에 생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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