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모시고 궂은일 앞장선 심부름꾼

꼼꼼한 일처리에 몸에 배인 친절에 사랑 듬뿍
"코로나 빨리 사라져 마을회관에 모였으면"

해남에는 14개 읍면에 여성 29명을 포함해 513명의 마을 이장이 최일선에서 행정 보조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76명의 이장이 새로 선출됐다.

마산면 금자마을 김연심(69) 이장은 지난해 말 1년 임기로 재선출돼 올해로 8년째 이장직을 맡고 있다. 남편(민석홍·76)도 오래전인 27살 때부터 이장을 했다.

지난 22일 자택에서 만난 김연심 이장은 가장 큰 소망을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로 마을 어르신들이 회관을 이용하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보내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코로나가 빨리 끝나 예전처럼 회관에서 식사도 하고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화산 선창리가 고향인 그녀는 21살 되던 해 이곳으로 시집왔다. 시어머니가 잘살아라고 지어준 '동산댁'으로도 불린다. 2015년 처음으로 이장을 하게 된 사정을 말했다.

"여성 이장을 선출한 마을에는 숙원사업비로 2000만원을 지원하다고 해서 어르신들이 밀었어요. 그 사업비로 또 하나의 우산각을 세웠답니다. 당시 해남에서 30명이 넘는 여성 이장이 나오는 바람에 이듬해 지원 정책이 폐지됐지만요."

이후에 매년 투표를 통해 이장으로 다시 선출됐다. 금자마을은 49가구에 주민이 105명으로 꽤 큰 마을이다. 최고령인 93세의 할머니가 세 분이고 유독 홀로 사는 어르신이 많다.

오랫동안 이장을 맡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래도 여성 이장이 어르신을 잘 모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르신들이 '타지에 사는 자식이 열이라도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가까이 있는 딸처럼 생각해주신다"며 "죽을 때까지 이장을 해달라고 하셔서 선뜻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이 고령화되면서 심부름꾼으로서 이장 역할도 늘어난다. 어르신들이 면사무소나 농협에 업무가 있으면 대신한다.

함께 있던 김옥희(64) 부녀회장이 한마디 거든다. 부녀회장은 목포가 고향으로 경기 김포에서 살다가 5년 전 이곳으로 귀농했다. "우리 이장님은 무슨 일이든 앞장서 처리해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며 "남자 이장과 달리 어르신들이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물어도 편안하게 응답해준다"고 말했다.

여성 이장은 어르신을 모시거나 면사무소에서 서류를 떼는 업무 등 꼼꼼한 일처리에는 남자보다 더 적격이다. 고령화와 독거노인이 늘어나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이장부터 찾는다. 말 그대로 심부름꾼이다.

지난해 어느 날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아들에게서 급히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도착해보니 그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 고인을 모시고 병원으로 옮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다. 폐기 처분하려는 도로변 동백나무 60그루도 가져와 마을 공원에 심었다.

김연심 이장은 "잘나서 이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봉사하고 대변하는 자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장 수당으로 올해 4만원이 올라 매달 34만원을 받는다. 영농회장도 겸하고 있어서 농협으로부터 12만5000원의 수당도 있다. '11급 공무원'이라는 달갑지 않는 별칭이 붙은 마을 이장에 주어지는 수당은 최일선의 행정업무와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는 현실에서 명목상 대가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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