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섭(해남군농민회 정책실장)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계절의 변화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도 같이 빠르게 느껴진다. 논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던 것이 마치 어제인 양 또렷한 영상으로 남아 있는데 벌써 새해 영농계획을 세우고 내년 농사를 준비할 때가 되었다.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의 마음은 출구 없는 길을 걷는 것같이 어둡고 무겁기만 하다.

올해 농민들은 치솟는 인건비와 농자재 가격상승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데 다가오는 새해에도 요소수 사태로 인한 비료가격 상승이 예상되고,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인한 여파 또한 우리 농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비준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 의결까지 마쳤고, 내년 2월 1일부터 발효된다고 한다.

RCEP는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 호주·중국·일본·뉴질랜드 등 14개국에 우리나라까지 포함하면 총 15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무역협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신자유주의 시장개방에 따른 농업피해가 누적되고 백약이 무효한 지경인데, 정부는 협정에 따른 농민들의 피해에 대한 대책도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개방농정의 가도를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것 같다.

농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상승 등 농업을 둘러싼 내·외적 여건들이 갈수록 악화되는 현실은 농업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데, 정부의 농업정책은 무지하고 무책임하기가 도를 넘고 있다.

수입농산물은 값이 싸고 국산 농산물은 생산비가 올라 값이 비싸니 농사를 짓지 말아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그렇다"고 대놓고 말할 정치인이나 관료가 있을까?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만약 있다면 이런 현실이 득이 되거나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21%밖에 안 되어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식량위기 국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90일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의 식량 위기와 농업농촌문제에 관심 있는 후보, 백약이 무효한 우리 농업을 위기에서 출구를 마련할 수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백약이 무효한데 출구가 있겠어"라고 반문한다면, 그동안 농민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해 왔고, 언젠가 신문을 통해 서울대 우희종 교수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는 남과 북의 통일농업을 이루는 데에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이 농업교류를 통해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기아를 해결하고 남한의 농업문제도 실마리를 풀어 가면서 통일농업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다. 미국의 제재로 남북 교류가 안 되고 통일도 멀어지는 지금의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 끊임없이 정부에 요구하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통일농업을 성사시키고 남북 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우리 농민들부터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농업생산비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는 농민들은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생산비가 적게 들어가는 농작물로 품목 전환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또 다른 작물의 생산과잉을 불러오고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농업소득은 줄어들고, 농업인구는 고령화되며, 농촌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 가운데 농촌마을은 빈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대책 없이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농촌사회의 붕괴로 이어지고 우려한 대로 지역소멸의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임인년 새해에는 어려운 농업과 농촌에 희망의 새싹을 틔우는 출구를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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