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승(전 전남평생교육진흥원장)

 
 

대진표는 완성됐다. 여야 모두 대통령 후보를 확정하고 4개월간의 대선 대장정에 들어갔다. 국민은 또 다시 선택의 순간을 맞았다.

성공한 대통령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대통령제의 원조격인 미국을 살펴보자. 미국은 '대통령학'이라고 부를 정도로 연구가 깊고,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 또한 가혹할 정도로 매섭다. 2000년대 초 미국과 캐나다의 미국사 전공자 7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역대 대통령에 대한 광범위한 평가가 이뤄졌다. 평가 분야는 지도력, 업적 및 위기관리 능력, 정치력, 인사, 도덕성 등 5개 분야. 조지 워싱턴부터 빌 클린턴까지 41명의 대통령을 평가했다.

최악의 대통령은 29대 워런 G. 하딩(1921~1923년 재임). 41위로 꼴찌다. "나는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며, 이 직책을 맡지 않았어야 했다"고 스스로 토로할 정도였다. 훤칠한 키, 화려한 언변, 잘생긴 얼굴은 그의 정치적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61%라는 압도적 지지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향인 오하이오주의 어린 시절 친구들을 중요한 자리에 임명했다. '오하이오갱'들이었다. 백악관은 그와 친구들의 도박판이 됐고, 금주법이 시행됐음에도 버젓이 술판이 벌어졌다. 그는 임기 중인 1923년 6월 알래스카로 휴가 여행을 갔다가 급환으로 사망했다.

하딩 다음 40위는 15대 대통령 제임스 뷰케넌(1857~1861년 재임). 남북전쟁이란 비극을 막지 못한 우유부단함이 그를 최하위로 몰아넣었다. 그의 임기 직후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1865~1869년 재임)은 39위. 에이브러햄 링컨의 암살로 취임했으나 정치적 리더십 부족으로 임기 내내 고전했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첫 번째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도 남겼다. 그나마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7200만달러에 매입한 것이 그의 공적으로 남았다.

율리시스 S. 그랜트(1869~1877년 재임)는 38위. 남북전쟁의 영웅이었지만 그의 임기는 정실 인사와 부정부패가 난무했다. 특히 황금 매점매석과 철도업자들에 대한 특혜 스캔들로 점철됐다. 오죽했으면 이 시대를 가리켜 '훌륭한 절도(竊盜)의 시대'로 불렀을까.

위대한 대통령은 누구일까.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61~1865년 재임). 부동의 1위다. 링컨의 위대함은 남북전쟁을 극복하고 연방을 유지한 데 있다. 더불어 지도자로서 견지했던 패자에 대한 관대함, 즉 남북전쟁 승리 후 그가 보여준 자비롭고 지혜로운 행동은 그를 위인의 반열에 올려놓기 충분했다. 남부연합의 대통령이자 링컨의 최대 라이벌인 제퍼슨 데이비스는 링컨의 죽음을 접하고 "남부연합의 패배 다음으로 링컨의 죽음은 남부가 지금까지 겪었던 가장 암울한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2위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1933~1945년 재임). 2차 대전과 공황이라는 대위기를 이겨낸 대통령이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우리가 두려워할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성취는 미국인들에게 잃어버린 희망을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89~1797년 재임)은 3위에 올랐다. 그는 특히 인사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서로 정적 관계인 토머스 제퍼슨과 알렉산더 해밀턴을 중용했다. 대법원장에는 존 제이라는 탁월한 인물을 임명해 새로운 연방 정부의 권능을 수립하고, 대법원을 하나의 제도로 구축했다.

위대한 대통령과 끔찍한 대통령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공통적으로 위대한 대통령은 평화로웠던 시기보다 위기에서 더욱 빛났다. 링컨은 남북전쟁, 조지 워싱턴은 건국, 루스벨트는 대공황과 2차 대전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했고 국민을 통합시켰다. 실패한 대통령들은 인사 실패와 자신이나 주변인의 부정부패, 정치력 부족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우리도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 이후 일상으로의 복귀, 경제난, 부동산 문제, 내부 이념 갈등 등 위기 요인은 산적하다. 국민의 고심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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