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해남고 교사)

 
 

지난 14일 화요일을 기점으로 올해 수시 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되었다. 학생들은 수시 원서를 쓰면서 불안함과 초조함에 현재 2학년 담임인 나에게도 상담과 조언을 구하러 온다. 자신들이 선택한 대학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불확실하니 선택에 대한 믿음이 필요해서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믿음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게 고작이다. 우리 아이들이 고생한 만큼 좋은 결실을 맺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런데 이즈음에 벌써 염려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수시 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된 후 펼쳐질 고3 교실 풍경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수시 합격을 자신하는 학생, 수능 최저를 대비하는 학생, 정시에 올인하는 학생, 그리고 대학 진학에 관심 없는 학생까지 마구 뒤섞여 온전한 수업은 기대하기 어렵다.

수능 최저를 맞추려는 상위권과 정시 대비하는 친구들은 수업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습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고 하향 수시 지원으로 이미 합격을 자신하는 친구에겐 수업은 취침시간일 뿐이다. 몇 명은 엎드려 자거나 혼자 자습하고 수업을 듣는 학생이 열 명 남짓 될까. 그것도 반쯤 감긴 눈으로 바라본다. 20분만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자습시간을 줄테니 수업시간에 집중해달라는 딜 아닌 딜을 하기도 한다. 아무리 수업 능력이 우수한 교사라도 고3 2학기라는 늪에 빠지면 딜레마에서 헤어나기 힘들다고 고백하는 현실이다.

3학년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아예 대입에 반영이 안 되고 생활기록부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없으니 공지된 시험 시간표도 신경 안 쓰고 시험 기간조차 모르는 학생도 더러 있다. 여느 때처럼 시험을 대비해 공부하는 학생은 없고 시험마저도 이러니, 수업 태도야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도대체 고3 2학기는 언제 정상화되는 것인가? 매번 대학입시와 교육 개혁을 논의할 때 항상 부제로 따라오는 것이 고3 2학기 정상화 운영이지만 이 부분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상화 운영이라고 해봤자 11월 수능 직전까지 붙잡고 수능 공부시키고 각 교과의 전공지식을 배우고 단위학교에서 학사운영 정상화 계획을 세우는데 이게 진정한 정상화 운영인지 의심스럽다. 졸업 전까지 모든 시스템이 입시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3 2학기는 초, 중, 고 의무교육 12년을 마치는 마지막 학기로 사회에 성인으로 나서는 특별한 학기이다. 12년간의 긴 터널을 지나온 것을 축하하며, 최소한 수능이 끝나고 나서라도 성인으로서 사회에 나갈 준비과정을 전남에서도 공통적으로 제공해주면 좋겠다.

실제 사례로 제주시 자기주도학습센터에서는 2016년부터 예비성인준비교육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라는 프로그램을 학교에 제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필수 지식과 대학 및 사회에 나갔을 때 경험하게 될 여러 유형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과 유용한 지혜를 배우고 공유하는 과정이다. 사회에 나가면서 당장 필요한 근로계약과 최저시급, 성인으로 직접 부딪히는 생활경제인 소득과 소비관리, 자신의 인권을 지키는 방법과 자기 관리, 현명한 대학생활 준비 등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배우며 새로운 꿈과 가치를 창출하는 자기 주도적인 성인으로의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해오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졸업 직전까지 대학, 대학만을 외치다 삶의 지식과 지혜를 모른 채 세상에 던져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딱 한 번만 자유학기를 해야 한다면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진로 탐색이라는 낱말조차 어색한 중학교 1학년 대상의 자유학년제보다 고3 2학기가 자유학기로 더 어울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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