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황산면 외입리)

 
 

여생을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보내기 위해 알아보던 중 지인의 소개로 해남 황산면에 정착한 지 벌써 1년이다.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는 우리 집은 위치상 모든 길이 바다로 연결된다. 그래서 답답할 때마다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가 넓은 바다를 볼 수 있는 선물과도 같은 집이다.

낡고 오래된 집이지만 깨끗이 수리해 마당에 정원을 만들고 여러 꽃나무들을 심었더니 1년 내내 예쁜 꽃들이 서로 경쟁하듯 피고 진다. 한쪽 귀퉁이 에 텃밭도 만들어 여러 가지 채소 등을 심었더니 반찬 걱정 없이도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때마침 한가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직장도 생겼다. '땅끝해남 시니어클럽'에서 김부각을 만드는 일이다. 만65세 이상이면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등록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매달 용돈처럼 들어 오는 금액이지만 통장 잔액이 쌓여가니 마음이 뿌듯하다.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데 자부심도 생겼다. 이곳 '시니어 클럽'에서도 경험 많은 노인들은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김부각'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김부각을 만드는 시니어들의 손등은 연륜을 말해주듯 주름이 가득하다. 그러한 손으로 수를 놓듯이 찹쌀로 지은 하얀 밥알과 비트, 강황가루를 섞은 보라와 노란색의 밥알을 풀 먹인 김 위에 곱게 펴나가는 시니어들의 주름진 손은 아름답기만 하다. 그 손으로 한평생 가족을 위해, 또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았으리라.

이제 그들은 성실하게 살고 있는 자녀들의 훌륭한 모습을 자랑하며 즐겁게 김부각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어렸을 적 할머니가 만들어 준 김부각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화학 조미료로 만든 간식을 맛있다고 먹어대던 손주들을 생각한다.

평생 자식들을 걱정하며 살았던 그들은 이제 손주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김부각을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나 역시 멋있게 성장해 나갈 이 땅 위의 수많은 손주들을 생각하며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 일이 없었다면 하릴없이 하늘만 바라보며 지난 날을 회상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곳 땅끝 마을 해남의 하늘은 유난히 맑고 깨끗하다. 그래서인지 새벽녘에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은 온 세상을 지배할 것 같은 강렬한 힘을 느끼게 한다. 한낮에 솜사탕처럼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은 형형색색으로 어우러진 저녁노을의 품속으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소리없이 어둠 속으로 숨어든다. 이처럼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이곳에서 논과 밭을 일구며 한평생 살아온 시니어들의 해맑은 모습은 아름다운 빛으로 하늘을 수놓는 해남의 저녁노을과 참 닮았다.

이분들과 함께 건강하고 맛있는 김부각을 한장 한장 만들어 가는 나에게 '김부각'은 인생의 끝자락을 건강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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