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숙(고정희 기념사업회장)

 
 

고정희에 대한 오래된 기억 하나. 십오륙 년 전의 일이다. 내가 해남으로 삶의 거처를 옮기기 전, 전남국어교사모임에서 신규로 발령난 국어교사들을 위한 자율 연수를 목포에서 열었다.

그때 그 모임의 집행부에서 활동을 하던 나도 동료 교사들과 함께 연수에 진행팀으로 참여하였다. 연수를 마치고 서울에서 내려온 강사분이 '해남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해 우리 일행은 해남으로 향했다. 땅끝 바다를 향하여 어느 길모퉁이를 돌 때 일행 중 한 선생님이 "맞다. 해남에 고정희 시인 생가가 있지"라고 했다. 길가에 세워진 안내 표지판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잠시 시인의 생가에 들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이야기하다 그대로 바다로 달렸다. 시인의 생가는 나중에 방문하기로 했다. 그때 당시 나는 고정희 시인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아, 많은 시인 중에 그런 시인도 있나보다 했다.

그런 내가 고정희 시인을 좀 더 많이 알게 된 것은 해남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의 일이다. 해남으로 옮겨온 후 낯선 곳에서 지내게 된 나를 환영해 주고 도와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들을 통해 고정희 시인을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해남에서 살아가면서 고정희 시인을 알아가면 갈수록 그를 몰랐던 지난 시간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고정희 시를 같이 읽고, 생가 청소를 같이 하고, 추모 행사도 같이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고정희 시인과 많이 가까워졌다.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처지이다 보니 고정희 시인을 알아갈수록 학생들에게도 고정희 시인에 대해 알리고 싶어졌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읽으며 위로를 받고 고단한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듯이 학생들도 고정희 시인을 통해 위로와 힘을 받기를 바랐다. 시 단원을 수업하게 되면,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작품을 추가로 살펴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면 반드시 고정희 시인의 시를 같이 살펴보도록 자료를 준비했다. 힘든 생활에서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생각에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소개해줬고 아직도 가부장적 분위기가 온존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여성이건 남성이건 상처받지 않고 서로 배려하며 살아갈 건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며 '우리 동네 구자명씨'를 함께 읽었다. 사춘기가 되어 사랑에 눈을 뜨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사랑을 하는지, 어떤 사랑을 하는지 생각을 해보게 하려고 '고백'을 같이 읽어보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위로받고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고정희 시인 30주기가 다가온다.

이제 우리는 시인의 생가와 무덤을 찾아간다. 수확이 다가온 마늘밭 옆에서 마늘향을 맡으며 우리는 시인과 만난다.

시인의 무덤가에서 노래도 하고 시도 읽고 시인의 올케 언니가 삶아주신 완두콩을 먹고 수박도 나눠 먹는다. 시인의 무덤에 꽃도 바치고 생전의 시인이 좋아하시던 와인도 한 잔 따라 올린다. 시인의 무덤가에서 우리는 멀리서 온 시인의 친구들도 만난다. 시인 덕분에 만나게 된 아름다운 인연들과 다시 무덤가에서 만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함께 부르며 무덤 앞에 피는 멀구슬꽃의 보랏빛과 그 향에 취해 보는 것도 시인으로 인해 얻는 즐거움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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